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 고전을 찾아서

대빈창 2010. 10. 4. 06:01

 

 

책이름 : 우리 고전을 찾아서

지은이 : 임형택

펴낸곳 : 한길사

 

책 표지 그림은 김홍도의 '규장각도'다. 책은 초간 1쇄본으로 2007년 10월에 출간되었다. 부피도 750여쪽으로 만만치가 않다. 신간서적에 욕심을 부리다보니, 이 두터운 책은 자꾸 뒤처진다. 낙도에서 처음 보내는 한가위 연휴를 맞아, 그래! 일단 잡아보자. 용기를 낸다.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순전히 저자 때문이다. 벌써 20여년 저쪽의 세월이다. 창비에서 출간된 이태준의 '문장강화' 문고판의 해제자로서 저자를 처음 알았다. 2년전 주문도에 이사를 해 책장을 정리하니, '문장강화'가 누구 손을 탔는 지 보이질 않는다. 한때 습작소설을 긁적거리던 미련이 남아서일까. 꼭 소장할 책도 아니면서 괜한 조바심이 인다.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지은이의 이름을 입력한다. 발매일순으로 책들을 배열한다. 아! 그런데 이 책이 맨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리 고전' 잠시 머뭇거리다 가트에 던져넣고는 이제야 책씻이를 했다. 이 책은 이 땅의 인문적 교양 수준을 높이고, 문화적 지평을 넓히려는 취지로 만든 한길사의 교양도서 시리즈 '이상의 도서관' 1권으로 출판되었다. 우리 문화유산 중 가장 풍부한 한문 서책이 매장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30여년을 학자적 열정으로 매진한 한 한문학자의 집요한 끈기가 일군 결산인 것이다. 소개된 40종의 책은 고려말 이색의 '목은집'에서 시작해 20세기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 이태준의 '해방전후'를 마무리로 600년에 걸쳐 산출되었다. 실린 책에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약용의 목민심서, 황현의 매천야록처럼 익숙한 이름과 함께 권헌의 진명집, 심대윤의 심대윤전집, 이복휴의 한남집처럼 낯선 책들도 실려있다. 또한 나주 임씨 집안의 '회진세고', 원주 이씨 집안의 '원주세고' 등 가문의 유산에도 저자의 눈길은 닿는다. 나의 눈길이 오래 머문 책으로는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일대의 재사'로 불렸으나, 이제서야 저자에 의해 햇빛을 본 이학규의 '낙하생 전집'이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삼 영농교본이라 할 '삼서(參書)가 들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책은 굶주려 죽어가는 민초들을 살리려 구황식품 고구마의 새로운 재배법이 실린 '완영일록'으로 실학자 서유구의 저서다. 서유구는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손수 고구마 재배법을 조사, 실험하여 새로운 재배법을 권장한 것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한길사가 단재 신채호의 역사정신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하고 시상하는 단재상의 22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단재 선생은 나에게 아직 뚜렷하게 인상이 남아있다. 후배가 건네 준 작은 액자에 담겨진 선생의 사진 때문이었다. 아마! 최루가스 속의 일상에서 결의를 다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조선상고사' 책에 실린 선생이 정면을 주시하는 상반신의 흑백사진이었다. 시골집 사랑방 앉은뱅이 책상위에 올려놓고,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다 4년여 만에 낙향하니, 선생의 사진 액자는 훼손되어 있었다. 가욋돈이 궁했던 어머니가 내 방을 자취방으로 내 놓았던 것이다. 마침 농촌으로 밀려 들어온 영세업체(낚시대 제조공장)의 공장노동자가 생활하고 있었다. 젊은 날 힘들때마다 눈길을 주던 사진액자부터 살폈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보디빌더 몸매의 여자와 남자가 반나체로 폼을 잡은 영화 포스터가 액자에 박혀 있었다. 다행히 단재 선생은 포스터를 걷어내자 그동안 막힌 숨을 한번에 토해 냈다. 막내기질이 강해 의지가 약했던 나는 선생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젊은 날의 한 시절이었다. 감옥에 갇혔던 때, 춘원이 보석금으로 출옥을 종용하자 가래를 얼굴에 뱉어주었다던 단재, 가난에 찌든 선생이 안스러웠으나, 그 고집을 누구보다 잘아는 동지들이 지폐를 이부자리 밑에 넣어 주었으나 숯검정이 되었다던 일화. 나는 지금 사진 속의 선생 눈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나의 삶은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시대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뻔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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