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대빈창 2010. 10. 22. 03:08

 

 

책이름 :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지은이 : 윤구병

펴낸곳 : 휴머니스트

 

나의 블로그 카테고리 '책을 되새김질하다'에서 그런대로 가끔 얼굴을 내민 이가 이 책의 저자이다. 환경 생태 관련 책을 읽으면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이 책의 저자였지만, 이제서야 정말!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러 글에서 감초 격으로 지은이의 특이한 이력을 소개했다. 또한 지은이의 이름 '구병'도 심상(?)치 않다. 저자는 아홉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첫째가 일병으로 시작되니, 막내는 당연히 '구병'이 되었다. 지은이의 가족사도 여지없이 우리 민족의 분단이 빚은 아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한국전쟁 중 맏형부터 여섯째 형까지 잃어, 아버지는 밑으로 남은 삼형제를 데리고 시골로 낙향한다. 작고한 시인 윤중호의 산문집 '느리게 사는 사람들'에 지은이의 바로 윗형 '윤팔병'의 인간미에 대한 얘기가 실려있다. 지은이는 1996년 충북대 교수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그리고 변산에 내려가 말그대로 초가삼간을 짖고 공동체를 꾸린다. 이 책은 변산공동체 생활 10여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좀 더 가난하고 불편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 '마음 놓고 사는 세상, 그게 내 팔자고 소원이네', '바늘이 컴퓨터보다 위대하다' 4개의 장에 모두 44개의 챕터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가난은 지긋지긋한가. 물론 강요된 가난은 그렇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삶은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사는 길로서 행복에 이르게 한다고. 그것은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원자화된 개인으로서의 도시적 삶이란 다름아닌 소유욕과 탐욕, 병적인 욕망에 찌들린 인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제초제와 농약은 인간의 의식'속에도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 인간, 물질 중심주의 사고방식이다. 우리를 감싸는 더 큰것들과 더불어 같이 하는 마음이 없는 산업문명은 인류의 공멸이라는 대재앙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도 지은이와 같은 선각자를 알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도대체 내가 속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어떻게 이 지구를 멸망으로 이끄는 지를 알고나 죽는다는 것이. 다행이다. 더 큰죄를 짖는 망나니 놀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 불편한 섬 생활이지만 지금의 삶이 나는 행복하다.

아버지는 아들 둘을 낳고서, 좀더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김포 통진으로 이사했다. 50여년 전이었다. 그때 석모도의 문전옥답은 비경지 지역 김포 통진의 논을 두배 이상 살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마음먹은대로 된다면 모두의 삶은 천국일 것이다.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도시 생활을 하던 형제들의 손내밈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장남으로서. 문전옥답을 처분한 돈은 술술 빠지고, 고작 논 한 구역이 전부였다. 도지를 빌려 두 구역 논농사를 짖는 고달픈 소농은 섬이나 매한가지였다. 통진에서 아들과 딸을 더 두어, 자식은 모두 3남1녀가 되었다. 보잘것 없는 농투성이 살림이지만, 새끼들을 남한테 뒤지지않을만큼 공부시킨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토건족이 절대 승자로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는 이 땅의 삶은 치욕적이기까지 하다. 약자는 다만 착취, 수탈, 억압의 대상일 뿐이다. 이것이 세계경제대국 13위라는 대한민국의 오늘의 현실이다. 체념과 굴종에 찌들린 민중은 갖은 자들의 개발논리에 밀려, 불에 타죽거나 자살로 내몰린다. 통진이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불가사리 같은 토건족들의 눈에 사람살이의 참모습이 보이겠는가. 개발에 따른 이윤에 혈안이 된 그들에게 원주민의 삶은 개발, 성장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일 뿐이다. 유람선이 흰구름아래 한가롭게 노니는 조감도가 마을에 세워졌다. '김포 한강신도시'란다. 그런데 내가 살던 자연부락의 모든 땅이 한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나머지 마을 주민은 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논 한구역이 남았다. 그것을 처분한 돈을 형제들과 나누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해의 낙도에 둥지를 틀었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를 화장한 유골을 텃밭 가장자리에 모과나무를 심고 수목장으로 모셨다. 그리고 작은 비석에 이렇게 새겼다. '자연으로 돌아가시다.' 어머니는 주말을 맞아 섬에 들어오는 새끼들을 위해 김치를 담글 텃밭의 열무를 솎는다. 그런데 불안하다. 여기 섬이라고 안전할까. 조력발전소을 짖는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이 땅의 자연은 없다. 다만 개발을 기다리는 유보지일 뿐이다. 만세! 대한민국. 모든 강은 수로로 일직선화하여 운하를 개통하고, 모든 땅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는 그날까지. 이것이 바로 토건식 저탄소 녹색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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