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지은이 : 황지우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이번 책을 잡으면서 나는 황지우의 시집으로는 두번째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1년전 시인의 첫 시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잡았었다. 아! 그런데.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전문) - 를 읽으면서 나의 눈길은 방 한벽을 차지한 서가를 훑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1995년 학고재 화랑에서 열린 시인의 조각전을 기념해 출간한 조각시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가 얇은 부피로 다른 책들 틈에 끼어 숨어 있었다. 도록 형식의 시집은 부피에 비해 꽤나 가격이 비쌌다. 조각에 문외한인 내가 왜 이 시집을 구했을까. 시인의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외도를 엿보고 싶었을까. 조각시집에 실린 시편은 총 12편이었는데 그중 이 시집에는 9편만 실렸다. 이것은 '시장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서 문학의 귀족성'을 옹호하는 시인의 장인정신의 소산이라고 친구 소설가 이인성이 발문에서 밝혔다.
내 중세 정원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번개(섬광 中에서). 연못 둘레에/樹齡 三百年 百日紅 나무들/구부정하게 서 있다(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中에서).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紫薇나무가/ 나의 화엄 연못, 지상에 붙들고 있네(물 빠진 연못 中에서.) 여기서 자미나무는 배롱나무다. 배롱나무와 연못의 정원하면 곧 전남 담양의 명옥헌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의 손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펼친다. 그렇지. 시인의 명옥헌 집필실 남쪽 커다란 창 정면으로 보이는 산 너머가 망월동이었다. 시인은 여기서 그 유명한 '화엄광주'를 썼다.
이 시집에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몇 편의 시가 눈길을 끈다. '太陽祭儀'에는 생과부가 된 젊은 어머니를 그리는 어린 시인이 화자로 등장하고, '이 세상의 밥상'과 '안부 1'에는 병앓이하는 늙은 어머니와 치매걸린 노모에 대한 시인의 애틋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 시집의 후반부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시편이 대여섯편 실려있다. 시인은 그때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연극원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이후 시인은 한예종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는데 못된 세월을 만나, '세상을 뜨는 새들'처럼 사표를 내던진다. 시인의 가족사는 곧 이 땅의 질곡의 현대사다. 아버지는 일제 때 옥고를 치렀고, 삼촌은 여수· 순천사건 이후 빨치산이 되었다. 맏형은 스님이고, 아우는 노동운동가다. 시인은 서울대대학원 재학중 광주민중항쟁에 참가한 죄(?)로 구속, 제적 당했다. 슬프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울적해질때마다 나는 시인의 시집을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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