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산천을 닮은 사람들

대빈창 2007. 10. 22. 13:37

 

 

책이름 : 산천을 닮은 사람들

지은이 : 고은외

그린이 : 김정헌외

펴낸곳 : 효형출판

 

보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삼우제를 지낸 한적한 늦가을 오후, 마음이 허해진 나는 책장을 둘러 보았다. 손에 잡던 책들은 외딴 섬에 있는지라, 책장에는 삼년 전에 읽었던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무 책이나 꺼내 갈피를 뒤적이다가, 화가 김정헌의 ' 백두산을 지키는 김씨'라는 도판이 눈에 들어와 10여년 만에 다시 '산천을 닮은 사람들'을 손에 잡았다. 백두산이 엷은 푸른색으로 배경에 자리잡고, 정면 중앙에 흙색의 굵은 선으로 삽자루를 움켜쥔 농부가 그려진 그림이다. 한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아온 아버님이 연상되었을까. 아니면 '땅이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든다.'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을 떠올리며 다시 그 산천으로 돌아가신 부친의 죽음을 생각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백두대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빠져 든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산천을 닮은 사람들'은 백두대간 기행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다소 길지만 책머리의 '백두대간' 개념을 인용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우리나라 땅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山徑)를 일러 백두대간이라 하였다. 곧 백두에서 시작되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크게 나누어 동서 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大幹), 정간(正幹)이라 하고,  그로부터 다시 갈라져 하나하나의 강을 경계 짖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正脈)이라 하였다 산과 물이 하나로 자연을 이루고, 언어, 습관, 풍속 등과 의식주의 다양함이 산줄기와 물줄기의 가름으로 세분화되어 생활철학을 탄생하게 되었다.'

- 나의 인식 속으로 새롭게 입력된 '백두대간'의 끝줄기 지리산의 최고봉 해발 1915m의 천왕봉을 보고 싶었다. 여적 이 나이까지 한반도의 등줄기는 태백산맥으로 시작되는 일본식 산맥지형 개념을 아무 의미없이 받아들여 앵무새처럼 읊조렸던 자기회한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했는지도 몰랐다. 땅위 산줄기는 땅속 지질구조와 일치한다고 보는 고또분지로 식의 지리학은 다름아닌 식민지 지하자원의 수탈을 염두에 둔 왜곡된 지질학적 연구로서 버젓이 지금 이 시대에도 지리교과서에 실려있다. 백두산은 우리민족에게 정신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백두산은 조선 산줄기의 근원'이라고 한 지리학적 서술은 대동여지도에 잘 나타나 있다. 천지를 머리에 인 백두산에 이 나라의 모든 산과 산줄기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1769년 여암 신경준이 펴낸 산경표(山經表)에는 이 땅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고, 백두대간을 모든 산줄기의 기둥으로 삼았다. - 10여년 전 지리산 자락을 돌아보고 나서 쓴 답사기의 글머리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시절 나는 새로운 개념 '백두대간'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그 흔적이 농업기술센터 내 농경문화관의 1층 로비 기둥의 강화도 지형 설명문에 남아있다. 강화도의 산줄기를 설명하는데, 지리교과서에 배운 대로 '차령산맥'이니, '광주산맥'이니 분분하는 것을 듣다 못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일제시대 수탈 목적으로 급조된 산맥 개념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하여 나는 산경표가 일러준 대로 강화도의 산줄기는 '한남정맥'이라고 일러주었다.

'산천을 닮은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땅의 지역적 구분을 '산경표'대로 산줄기와 물줄기로 가름하여 대표적 민중작가 12명과 민중화가 13명이 짝을 이루어 12 지역을 답사한 기행문 모음집이다. 민중에 대한 애정이 깊은 예술가들이니만치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장엄하게 노래하고, 그 노래에 걸맞는 그림이 글의 맥락에 맞추어 지역마다 서너 점이 그려졌다. 아버님은 다시 이 땅의 산하로 돌아가, 나의 삶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근래들어 '백두대간'은 일상에 가까이 다가섰다. 문상객들은 대접한 맥주는 백두대간 암반수로 빚은 하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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