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

대빈창 2022. 4. 4. 07:00

 

책이름 : 죽은 시인의 사회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도서출판b

 

작년 연말, 강화도 지역신문사 〈강화뉴스〉에 발걸음을 했다. 미얀마 민주화 투쟁을 돕기 위해 안 쓰는 노트북이나 데스크 탑을 모아 보내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사무실 캐비넷 구석에 잠자고 있던 묵은 노트북을 들고 찾아갔다. 마침 신문사 사무실에 시인이 편집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인은 1인 시위를 마치고 신문사에 들렀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름을 넘긴 읍내 사거리에서 팻말을 든 시인을 보며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시인의 시집 세 권을 손에 잡았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님 시집』, 『신강화학파』.

시인과 3-40여분 대화를 나누었다. 시인은 〈강화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서해 작은 외딴섬 ‘율도군이라는 가상의 군郡’을 소재로 한 〈단편 판소리체시〉 연작시를 묶은 새 시집이 신년 1월이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35번째 시집이었다. 나는 시인에게 물었다. “새 시집도 b에서 나오나요.” 시인의 시집들은 10년 전부터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고 있었다. 두 달이 흘러갔다. 무슨 일인지 시집 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시인의 38번째 시집 『죽은 시인의 사회』(도서출판b, 2020)를 온라인 서적에 주문했다. 시집은 피터 위어 감독, 톰 슐만 각본의 동명 영화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의 한 구절이었다. 영화를 상징하는 대사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였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연작시 57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홍승진의 「시인이라는 고유명사는 보통명사가 되어서」였다. 시편들은 한국 시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시인들 71명(본문과 주석 포함)을 등장시켰다. 윤동주, 권정생, 임화, 백석, 김수영, 이상화, 김남주, 신동엽, 조태일, 이육사, 한용운, 유진오······ . 시인은 ‘시를 잘못 쓴 죄가 가장 큰 죄’였다.

 

······ / 시인이 독재자에게 부역하기 위해 쓴 헌시를 / 독자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 그 시인이 쓴 서정시랄까 순수시랄까 / 그런 시도 독자가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 ······ / 지하에서 보낸 인생에서 깨달은 점은 / 시를 잘못 쓴 죄가 가장 큰 죄라는 진실이었다고 / 어떤 시인이 고백했을 때, / ······

 

「죽은 시인의 사회·18」(47-48쪽)의 일부분이다. 일본 군국주의와 독재 권력에 부역한 시인들이다.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노천명, 모윤숙, 이용악, 주요한, 김동환, 김상용, 유치환, 이원수, 김춘수, 조병화, 김영랑, 변영로.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나는 작은 외딴 섬에서 몸을 사렸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들면 시인을 섬에 초대하여 밥 한 끼 모셔야겠다. 그때쯤이면 시인의 39번째 시집도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었을 것이다. 하종오(河鍾五, 1954년 - )시인은 말했다. “시인들이 좋은 출판사에 시를 내려고 하는데 거대 출판사는 다 자본화된 출판사들입니다. 비자본주의자인 시인이 시집은 자본주의 회사에 내려고 하는데 그것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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