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

대빈창 2022. 12. 5. 07:30

 

책이름 : 문명을 지키는 성벽 위에서

지은이 : 진 록스던

옮긴이 : 이수영

펴낸곳 : 상추쌈

 

《상추쌈》은 지리산자락 하동 악양의 시골 출판사다. 출판인 부부는 2008년 하동으로 귀농했다. 논 600평, 밭 500평의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책을 내었다. 2021년 11월에 출간된 『문명을 지키는 성벽 위에서』는 그 해의 첫 책이었다. 『스스로 몸을 돌보다』(2013) / 『나무에게 배운다』(2013) / 『다시, 나무에게 배운다』(2014) / 『참된 문명은 사람을 죽이지 아니하고』(2019). 그동안 내가 잡은 출판사가 펴낸 책들이었다.

진 록스던(Gene Logsdon, 1931- 2016)은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도시 근교에 살며 시골살이에 관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였다. 마흔두 살에 고향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32에이커 작은 농장을 꾸렸다. 농사길잡이, 에세이, 소설까지 그는 마흔세 권의 책을 남겼다. 책을 여는 「여기 성벽에 남아」는 사악한 정부보조금을 거부하고 제도에서 스스로 멀어져 자립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성벽의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시대를 통틀어 변두리에 진을 친 소농들이었다.

반골농부는 아미시, 오하이오 소농 이웃들, 도시 텃밭 농부들, 도전적이고 비전통적인 유기농들, 농촌에서 살아가는 진정한 저널리스트들에게 존경어린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그는 근원적 생태주의자 스콧・헬렌 니어링 부부를 존경했다. 10장으로 구성된 본문은 농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꼼꼼한 한해살이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미국식 농사법이라 현실적 도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에필로그 「진 록스던이 소중하게 여기는 책」은 작가 20명의 25권의 책을 소개했다. 이중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은 세 권 뿐이었다. 웬델 베리의 『소농, 문명의 뿌리』(한티재, 2016), 데이비드 오어의 『생태 소양』(교육과학사, 2013),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두레, 2018). 반골 농부는 1969년에 출간된 웬델 베리의 『다리가 긴 집』의 ‘고향의 언덕’이라는 글을 접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이 땅에도 초보 농부들을 위한 훌륭한 책이 있다. 출판사 《들녘》의 ‘귀농총서’ 시리즈다.

절친 웬델 베리는 진 록스던이 죽은 뒤에 글을 남겼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농사에 대한 감각과 생각이 똑같이 옛 방식에 가까웠습니다.” 농부철학자 윤구병은 추천평에서 ‘“진 록스던은 자연의 속도로 소박하게, 값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들을 거두며 땅에 엎드려 하루하루 자연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진 록스던이 추구했던 꼴밭농업은 체계적인 순환 방목으로 문명의 몰락을 낳는 흙의 침식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무경운 농법‘이었다.

반골 농부가 지키려는 ‘문명’은 첨단을 달리는 기술 진보위에 서있지 않았다. 전통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며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다양한 생명까지 돌보는 농법이었다. 소농들은 ‘지난 암흑 시대에 수도원이 그랬듯이, 지구를 가혹하게 약탈하는 이 암흑의 시대에 문명을 지키는 작은 근거지’(241쪽) 였다.  책의 카피는 ‘거침없이 자연으로 나아간 한 농부의 아름답고 경쾌한 여정’이었다. 자연의 속도로 살다 간 유쾌한 문명의 파수꾼에게 진정한 대안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더 나아가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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