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지은이 : 박정대
펴낸곳 : 민음사
2018년 늦봄, 나는 시인 박. 정. 대.를 알았다. 재출간전문출판사 〈최측의농간〉의 예약판매 시집 『아무르 기타』를 통해서였다. 시인은 시단에서 ‘혁명적 낭만주의자’로 불리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읍내 유일의 서점에 시인이 펴낸 시집 전부를 주문했다. 품절과 절판된 시집을 제외한 네 권이 손에 들렸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민음사, 2001) / 『삶이라는 직업』(문학과지성사, 2011) / 『모든 가능성의 거리』(문예중앙, 2011) /『그녀에서 영원까지』(문학동네, 2016)
5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 〈민음의시 293〉으로 출간되었다. 내 책장의 시집은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천년의시작〉, 〈모악〉, 〈실천문학사〉, 〈걷는사람〉, 〈최측의농간〉등 골고루 포진되었다. 내가 알기로 양장본 시집 시리즈는 〈민음의시〉가 유일했다. 316쪽의 제법 묵직한 시집은 양장본이 어울렸다. 아마! 가장 두꺼운 시집일 것이다. 재출간시집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4〉 김정환의 『황색예수』는 447쪽이지만 초판본 1・2・3권의 합본이었다.
시인은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력詩歷 31년 만에 나온 열 번째 시집은 표제부터 눈길을 끌었다.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L'art du flocon de neige)'는 한국어로 '눈송이의 예술'이었다. 4부에 나뉘어 51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엄경희는 해설 「이주 혹은 귀환의 정신적 자서전」에서 '(시인은) 영화배우와 감독, 시인, 소설가, 뮤지션들, 철학자, 혁명가를 그의 시집에, 자신의 고독 속에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반복과 누적을 거치며 확장되어 왔으며 이 시집에 이르러 마치 그들이 총집결한 것처럼 보인다.'(288쪽) 시인 함성호는 발문 「은근하고 이상한 단 하나의 책」에서 '박정대의 낭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 그 세계가 완벽할수록 더 불완전한 현실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제한하며 만들어지는 파편들, 그리고 거기서 절대화되는 언어가 낭만주의자 박정대의 면모'(316쪽)라고 했다.
같은 제목의 詩가 세편이나 되었다. 「시」는 1부에, 「이절에서의 눈송이낚시」는 4부에, 「대관령 밤의 음악제」는 1부의 시는 32쪽, 2부의 시는 31쪽이나 되는 장시였다. 「오, 이 낡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 27 행성에 내리는 센티멘털 폭설」(92-119쪽)은 가스통 바슐라르 / 갓산 카나파니 / 닉 케이브 / 닐 영 / 라시드 누그마노프 / 미셸 우엘르베끄 / 박정대 / 밥 딜런 / 밥 말리 / 백석 /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 빅토르 최 / 아네스 자우이 /앤디 워홀 / 에밀 쿠스트리차 / 장 뤼크 고다르 / 조르주 페렉 / 짐 자무시 / 체 게바라 / 칼 마르크스 / 톰 웨이츠 / 트리스탕 차라 /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 프랑수아즈 아르디 /프랑수아 트뤼포 / 피에르 르베르디, 27인의 사진・초상화에 각각의 단상이 붙었다.
「멀리 떨어진 가장 가까운」(223쪽)의 컬러 이미지는 글을 쓰느라 생각에 잠긴 이자벨 아자니의 영화 한 컷이었다. 「이절극장」에 딸린 시인의 고향(정선 이절리)의 오두막 설계도, 시인의 스케치 초상화 3점까지 모두 31점의 이미지가 실렸다. 마지막은 헝가리 출신 여성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시집의 두 번째 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19쪽)의 전문이다.
태어난다는 것 // 산다는 것 // 죽는다는 것 // 그러나 이 세 가지 거짓말을 다 덮을 수 있는 마지막 아름다운 거짓말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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