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대빈창 2023. 4. 11. 07:45

 

책이름 :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지은이 : 윤희상

펴낸곳 : 강

 

시인 윤희상(1961- )은 1989년 『세계의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나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을 온라인서적을 통해 우편물로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동안 시인이 펴낸 세권의 시집은 모두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심지어 첫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의 재출간본도 ‘문학동네 포에지’ 시리즈로 나왔다. 신간 시집은 양장본이었고, 출판사는 〈강〉이었다.

4부에 나뉘어 67 시편이 실렸다. 뒤표지 추천사는 철학자 이승환이었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류신의 몫이었다. 평론가는 해설 「벌초된 언어와 체념의 시작」에서 “윤희상의 시어는 수사적 허장성세가 없어 간결하고, 사유의 곡예를 부리지 않아 검소하다.······. 자신의 상상력과 맞닿은 현실의 단면을 정직한 언어로 기술한다.”(113쪽)고 말했다. 표제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는 좁은 안목 때문인지 시편들의 어느 구절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인의 말」의 마지막 구절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더 살 수 있다면, 아직 말이 스미지 않은 곳으로, 그래서 보다 더 낯선 곳으로 가고 싶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이 시편 이곳저곳에 얼굴을 내밀었다.

 

범해 스님 / 화가 김환기 / 소설가 최인훈 / 종교학자 정진홍 / 동강학원 이사장 이장우 / 시인 최승호․김철주․기형도 소설가 양헌석 / 문학평론가 황현산 등.

 

시인은 고등3학년 때 80년 광주 오월과 맞부딪혔다. 나는 앞서 세 권의 시집처럼 광주 시편을 찾았다. 「색으로 기억하다」(59쪽), 「사진 안에 내가 있다」(60쪽), 「다시 광주에서」(61쪽). 마지막은 「환기미술관」(37쪽)의 전문이다.

 

아침마다 부암동 계곡에 안좌 앞마다의 푸른빛 물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밤의 마음자리에 그만큼 그리움이 짙은 까닭이다 물이 차오르는 밤이면, 달항아리를 껴안고 가서 그 물을 가득 담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했다 어느덧 꽃이 피었다 밀물과 썰물이 몸을 바꿀 때마다, 벌써 계곡에서 마당으로 이 세상의 빛깔을 다 받아들인 물빛이 넘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