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

대빈창 2023. 4. 14. 07:00

 

책이름 : 헌책방 기담 수집가

지은이 : 윤성근

펴낸곳 : 프시케의숲

 

“해 봐야죠. 손님, 대신 수수료는 왜 그 책을 찾으시는지, 책과 얽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겁니다.” 서점 주인은 책을 찾아주는 수고료를 받지 않는 대신 그 책에 얽힌 손님의 사연을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2007년 서울 은평구에 문을 열었다. 15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인장은 1,000여 명에게 절판된 책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사연다운 사연을 들려 준 이는 100여 명이다. 이중 기묘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스물아홉 편을 골라 담았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는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7편 이야기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70대 노인이 찾는 책은 젊었을 때 은행에 다니던 시절, 좋아하는 여성동료에게 연애편지를 쓰면서 참고로 삼은 책. 80년대 명문대생으로 여학생의 과외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읽던 소설. 고등학교 특별활동 문예부에서 만나 남자끼리 서로 좋아했던 사이의 친구가 준 시집. 50대 고교동창 남녀가 동창회에서 만나 교지에 실렸던 독후감의 정확한 결말을 확인하려고 찾는 소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살았고 학교도 같이 다니다 결혼 한 부부가 초등학교 때 같이 읽었던 책을 아기가 태어나면 읽어주려 찾는 책. 소설의 여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여자와 맞선을 보고 결혼,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다시 찾는 다 읽지 못했던 소설. 화가가 강화도 바닷가 마을에서 지낼 때 친구들이 선물한 소설 내용과 비슷한 사건을 겪은 할머니와의 만남.

2부 7편은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겼다. 세월이 흘러 고교시절 부모 서재에서 훑어보던 책을 다시 읽고, 이혼한 부모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손님. 요양병원의 치매 할아버지가 서재의 책을 찾으며 소원했던 손녀가 책을 가지고 와 기뻐하는 모습. 고교시절 부친이 권한 책을 이사 와중에 잃어버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찾는 책. 동생과 다툼 끝에 찢어버린 책을, 시간강사 동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형은 동생이 쓰던 철학 원고에 도움이 되려고 다시 찾는 책. 부정적 사고방식의 손님이 아들의 여자 친구가 읽어보라고 권한 책.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와 보통의 삶을 산 노인이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던 책에 대한 회상.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한 형에게서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짧은 메모를 남긴 책을 찾아오는 책 찾아 삼만리.

3부 기담 편은 7편의 기묘한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원작 공포소설을 찾는 오싹한 분위기의 손님이 남긴 메모의 6이 세 개가 들어간 없는 전화번호. 서점 주인은 도쿄여행의 우에노공원 소프트볼 경기장 벤치에서 마주친 신사에서, 젊은 시절 세계를 직접 경험하려 배낭여행을 했다는 시력을 잃은 지 10년이 지난 손님의 환시. 세 번씩이나 헌책방에 찾아와 단편집에 실린 소설 내용이 떠올랐다는 손님의 이야기는 소설 지망생으로 자신의 작품. 자신의 운을 시험하려 책을 훔쳤다는 인생이 불운, 실패, 좌절,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손님. 돈을 걸고 손님이 의뢰한 책을 찾아 단골손님 M과 서점주인의 헌책방 거리에서 먼저 찾는 내기, 내기에서 이긴 M은 자기의 책을 내놓고 헌책방에서 영수증만 받은 반칙. 헌책방을 통해 책을 돌려주려는 미묘한 감정으로 대학시절 친구의 책을 훔친 손님. 운동권 출신의 노인네가 생일날 선물했던, 20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던 후배의 책은 오래된 주택가 재개발지구의 출장 매입을 통해 들어온 서재에서 발견. 

4부 8편의 이야기는 인생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서울을 빠져나간 손님의 고등학생 때 통째로 암기했던 시집. 친구가 권한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 우연히 신영복 읽기모임에 참석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찾는 손님. 헌책방만 가면 같은 책을 구입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오토바이 사고로 누워있다 자살한 친구가 부탁했던 책을 못 전해준 예 헌책방 동료의 죄책감. 고교2년 때 제주도 여행을 같이했던 친구가 몇 년 전에 죽었으면서 부인에게 한라산 등반 부분을 읽어달라고 했던 책. 스트레스성 불안장애로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에 박혀 책만 읽던 손님이 혼자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 준 책. 그 책을 읽고 출가, 승려가 되어 경전공부, 불경 번역에 힘쓰던 손님은 그 책으로 다시 30년 만에 환속. 오디션 공고에 합격하고 영화배우를 꿈꾸었으나 저질감독으로 꿈을 포기, 세월이 흘러 직접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영화를 제작하려는 손님. 삶에 자신만만하던 그는 기분전환용으로 읽은 소설 주인공의 불행한 삶에 책을 찢어버리면서 자신의 삶도 불행해졌고, 성소수자 정체성을 찾은 후 인생이 안정되자 책과 화해를 시도하는 손님.

헌책방 주인은 말했다. “새 책을 파는 서점에 갈 때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책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선 상태다. 특정한 책을 사러 가는 것이다. 하지만 헌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 책장을 훑어보다가 어떤 책이 문득 자기를 끌어당기면 그 책을 산다.”(9-10쪽) 그렇다. 헌 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책 스스로 나타나주어야 한다. 아무튼 자칭 활자중독자로 흥미진진한 책읽기였다. 소설가 장강명의 뒤표지 표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저자의 경험 중 일부만 추렸다고 하는데, 나는 벌써 속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