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악수
지은이 : 함민복
그린이 : 이철형
펴낸곳 : 국수
시간을 잘못 맞추면 마니산가는 길은 섬을 찾는 도시인들의 차량 행렬로 미어터졌다. 강화도 포구를 향해 일찌감치 인천승화원을 떠났다. 계묘년癸卯年 새해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길상 온수리 회전 교차로에 접어들자,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여우고개 밑 소담마을에 사는 함민복 시인에게 손전화를 넣었다. 시인의 집 〈은암재隱巖齋〉를 찾은 것이 재작년 11월이었으니 얼굴 본지가 1년이 넘었다.
마을 가장 꼭대기에 자리 잡은 시인의 집은 정족산을 후원으로 삼았다. 집으로 꺾어드는 공터에 들어서니 시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언젠가 차를 나누었던 한옥 카페를 떠올리며 커피 한 잔하자고 했다. 잠깐 기다리라며 집에 들렀다나온 시인의 손에 책 한권이 들려있었다. 부피가 얇은 양장본의 256*289 책판형은 어릴 적 표준전과 크기였다. 길상119 안전센터 맞은편 외딴 건물에 카페가 새로 들어섰다.
나는 항상 그렇듯이 아메리카노를, 시인은 의외로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카페의 마스코트 ‘탄이’가 무척 귀여웠다. 애완견에 문외한인 나의 눈에도 ‘탄이’는 말티즈 같았다. 녀석은 시인의 낯이 익은 지 테이블 곁에 얌전히 앉아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감자튀김을 서너 개 건네자 녀석은 눈 깜짝 할 새 삼켜버렸다. 시인은 카페 손님들이 귀엽다고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가 오히려 녀석의 건강에 안 좋을 거라고 염려했다.
하루 산책 걸렀다고 삐쳐 / 손 내밀어도 발 주지 않고 돌아앉는 / 길상이는 열네 살 // 잘 봐 / 나 이제 나무에게 악수하는 법 가르쳐주고 / 나무와 악수할거야 / 토라져 / 길상이 집 곁에 있는 / 어린 단풍나무를 향해 돌아서는데 // 가르치다니! // 단풍나무는 세상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싶어 / 이리 온몸에 손을 달고 / 바람과 달빛과 어둠과 / 격정의 빗방울과 / 꽃향기와 / 바싹 마른 손으로 젖은 손 눈보라와 / 이미 / 이미 / 악수를 나누고 있었으니 // 길상아 네 순한 눈빛이 /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었구나
길상이가 벌써 14살이 되었구나. 나는 길상이를 길상 장흥리의 지붕 낮은 황토집에서 처음 만났다. 강산이 변한다는 10여년 세월을 지나, 저만치인 지금 길상이의 집은 시인의 집 〈은암재隱巖齋〉의 뒤울안에 마련되었다. 아침에 눈뜨는 길상이를 가장 먼저 맞아주는 이가 단풍나무였다. 도대체 나는 시를 어디서 읽었을까. 다섯 번째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2013), 두 번째 동시집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문학동네, 2019), 개정증보판 산문집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시공사, 2021)의 차례를 뒤적여도 찾을 수 없었다. 이책 저책 뒤적인 끝에 나는 제18회 유심작품상 수상작에서 詩를 찾았다.
〈국수 시그림책 ①〉 『악수』는 함민복의 시 「악수」의 한 구절마다 화가 이철형의 그림 한 장씩을 더해 36쪽 분량의 시그림책이었다. 나는 〈작가정신 시그림책 ①〉 『흔들린다』를 책장에서 빼들었다. 꽤 오래전 어느 날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날 시인의 말은 자신의 시창작론이었다.
“詩는 독자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눈앞에 그려 보여주는 거야.”
p.s '탄이'의 안부가 궁금해 한 달만에 카페에 들렀다. 나는 역시 반려견에 문외한이었다. 주인께 물어보니 '탄이'는 포메라니안 블랙탄종이었다. 녀석의 이름 '탄이'도 블랙탄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는 탄이의 검정 털빛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짐작했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0) | 2023.01.16 |
---|---|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 (0) | 2023.01.13 |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0) | 2023.01.11 |
팜므 파탈 (1) | 2023.01.06 |
한국과 중국의 회화 (1) | 2023.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