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프리카 버스

대빈창 2023. 8. 10. 07:00

 

책이름 : 아프리카 버스

지은이 : 이시백

펴낸곳 : 도서출판 b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삶창, 2006) / 누가 말을 죽였을까(삶창, 2008) / 종을 훔치다(검둥소, 2010) / 갈보 콩(실천문학사, 2010) / 나는 꽃 도둑이다(한겨레출판, 2013) / 사자클럽 잔혹사(실천문학사,2013) / 검은 머리 외국인(레디앙, 2015) / 응달 너구리(한겨레출판, 2015)

 

지금까지 내가 잡은 소설가 이시백(1956- )의 소설집․장편소설이다. 벌써 8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 소설가의 책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책에 대한 강박증이 유다른 나는 작가의 첫 산문집 ‘시골살이의 꿈을 이룬 한 가족의 좌충우돌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시골은 즐겁다』(향연, 2003)를 손에 넣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가. 온라인 서적에 들어갔다. 첫 산문집은 여적 ‘일시품절’ 딱지가 붙어있었다.

몽골 에세이 『당신에게, 몽골』(꿈의지도, 2014), 『유목의 전설』(문전, 2020) 그리고 신간 장편소설 『용은 없다』(삶창, 2021) 세 권만이 나의 손을 벗어났다.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하고부터 거리가 멀어진 것 같았다. 희망도서를 신청해야겠다. 『아프리카 버스』는 소설가의 22년 시골살이 이야기였다. 그는 말했다. “대책 없이 낭만적인 『시골은 즐겁다』라는 산문집에 대한 반성이며, 그 책을 읽고 무작정 시골로 이사 온 분들에 대한 ‘애프터서비스’인 격”이라고.

1부 ‘산에는 꽃이 피네’는 산중생활의 즐거움과 고달픔을 그린 21편의 글이 실렸다. 광대울은 '물골'이라 불리는 수동면에서도 가장 후미진 골짜기였다. 그리 높지 않은 광대울 고개는 부잣집 잔치에 불려온 광대가 줄에서 떨어져 삯도 받지 못한 채 울며 넘었다는 애절한 사연이 전해 내려왔다. 소설가는 잣나무 숲과 자욱한 안개에 덮인 405평 갈대밭을 샀다. 좌우로 물소리가 들리는 골짜기로 정남향은 아니지만 봉긋하게 솟은 언덕바지로 볕이 온종일 들어설 것만 같았다.

축령산자락 불당골의 언덕바지 슬레이트집에서 이태를 보낸 소설가는 이웃 목수에게 떼를 써서 광대울에 허술한 목조주택을 지었다. 오미자 농사를 짓다 몇 해 묵은 칡덩쿨로 뒤 덥힌 670평의 밭을 샀다. 온종일 밭에 엎드려 땀을 흘린 뒤에 저녁상을 받고나면 ‘주경야졸晝耕夜卒’이 되었다.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기는커녕 요란스레 코를 골며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2부 ‘산골 외딴집의 이웃들’ 19편의 글은 반려동물과 가축에 대한 이야기였다. 산중 깊은 집은 토끼, 고라니, 산비둘기, 도롱뇽, 멧돼지, 다람쥐, 율무기, 반딧불이, 너구리 등이 이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곤충을 좋아했던 소설가는 하늘소, 땅강아지, 고추잠자리, 사슴벌레, 풍뎅이, 비단길앞잡이, 쇠똥구리, 보리방개가 눈에 띄었다. 함지박을 묻은 연못에 도롱뇽, 개구리, 두꺼비가 찾아왔다. 다래 덩굴에 둘러싸인 골짜기에 외따로 지은 바둑이와 검둥이의 집은 호젓했다. 두 놈은 협공으로 닭장의 닭들을 물어 죽인 족제비를 물어 죽였다. 오리농법하는 논에 들어가 오리사냥하다 논주인의 사냥총에 죽임을 당했다.

머리에 긴 털이 달린 ‘왕관앵무’ 앵돌이와 앵순이. 새끼 밴 들고양이가 연탄 광에 들어와 자리를 마련해주자 몸을 풀었다. 들고양이 세계의 ‘빵셔틀 고양이’. 〈상두야 학교 가자〉 드라마가 한창 인기있던 무렵 아들이 이름 지어 준 비글 ‘상두’는 사냥개답게 온 산을 헤집다 올무에 걸렸다. 다행스럽게 두꺼운 목띠로 인해 올무가 목을 파고들지 못했다. 풍산개 ‘백두’는 끊임없이 털갈이를 했다. 몇 해가 지나자 집 주변의 산들은 백두의 털로 희끗희끗 덮일 지경이었다. 소설가는 백두가 죽자, 화장을 하여 벚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았다.

나는 여적 첩첩산중 광대울로 들어간 작가의 소설만 잡았었다. 소설가는 뛰어난 에세이스트였다. “가을이 깊어간다. 깻단 터는 소리가 고소하고, 여름내 오미자밭을 덮던 칡들도 누렇게 말라 바람에 서걱거린다. 세상은 고요하고, 별들이 매단 은귀고리가 바람에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손에 잡힌다. 숲은 하루가 비어가고, 김장밭의 배추만 쓸쓸하게 푸른빛을 지키고 있다.”(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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