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커튼
지은이 : 밀란 쿤데라
옮긴이 : 박성창
펴낸곳 : 민음사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광고인 박웅현의 『여덟 단어』에서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책이 인용되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커튼』이다. 군립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작가를 검색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은 도서관마다 비치되어 있었다. 에세이 『커튼』은 면소재지 도서관에 있었다. 밀란 쿤데라는 출판사 〈민음사〉에서 1988년 처음 소개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7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그의 작품들은 총판매부수 100만부를 넘겼다.
그의 전집도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단편소설집․희곡․에세이 등 모든 작품을 출간 연도순으로 구성한 전집은 2013년 완간되었다. 내가 잡은 책은 〈전집 13〉 2판1쇄로 2012년 10월 펴냈다. 부제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가 가리키듯, 책은 7부로 구성되었다. 모두 74편의 글이 실렸는데, 대부분 2-3쪽으로 편하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커튼』은 현대소설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의를 밀란 쿤데라 특유의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 낸 에세이로 그의 현대소설론이기도 했다.
1부, 헨리 필딩은 소설 시학을 생각해 낸 최초의 소설가들 중 한 명으로 『톰 존스』의 열여덟 부 각각은 일종의 소설이론의 장으로 구분, 그는 소설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산문-희극-서사적인 글쓰기(prosai-comi-epic writimg)라고 지칭. 소설가의 야심은 이전 선배들보다 나아지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그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데에 있다.
2부, 슬라브 족의 언어적 통일성은 존재하지만, 그 어떤 슬라브 문화나 슬라브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1차 대전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제국의 잔재 위에서 독립국가 몇 개가 생겨났으며, 이들 모두는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삼십년 후에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카프카, 무질, 브로흐, 곰브로비치······ 중부 유럽의 위대한 소설가들은 소설을 위대한 반反 서정적 시로 간주했다.
3부, 소설이 아무리 고귀한 권위라 하더라도 권위에 복종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소설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소설가가 그를 위해 창조한 상황의 공간을 가득 메우기만 하면 된다. 중부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두 곳 모두 20세기 소설의 진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4부, 전설들로 짜인 마법 커튼이 세상 앞에 걸려 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떠나보내면서 그 커튼을 찢었다. 아무런 장식 없는 희극적 산문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기사 앞에 세상이 활짝 열렸다.(130쪽) 돈키호테가 글로 쓰이기 전에는 아무도 돈키호테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의외의 인물 그 자체였다.(146쪽)
5부, 한 현실이 느닷없이 모호한 상태로 드러나고, 사물이 자기 본연의 명백한 의미를 잃으며,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웃는다.(159쪽) 하나의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순한 것일지라도 정적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의 결과로서 또 다른 행위가 일어나 사건들의 연쇄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167쪽) 역사가 군중, 군대, 고통과 복수를 자극할 때면 우리는 개인의 의지를 구별해 낼 수 없다.
6부, 사회 현상의 실존적 영향력은 그것이 팽창할 때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미약한 상태인 초창기에 가장 날카롭게 인지될 수 있다. 16세기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카프카 시대의 관료주의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순진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1960년대 뛰어난 철학자들이 ‘소비 사회’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현실은 이 비난을 훨씬 뛰어넘었다.
7부, 인간은 바로 작동하면서 상호 협력하는 망각의 힘과 기억의 힘이라는 두 가지 힘에 의해 과거와 단절되기 마련이다.(214쪽) 소설가는 독자의 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설을 잊힐 수 없는 것의 파괴되지 않는 성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219쪽)
밀란 쿤데라는 우리 세상 앞에, 우리가 보고 읽고 느끼는 모든 존재 앞에 마법 커튼이 걸려 있다고 한다. 커튼은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가리고 숨기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튼 너머를 보지 못하고, 커튼에 적힌 대로 삶을 판단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그는 “세상 앞에 드리운 커튼을 찍어버리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정의했다. 세상은 가면을 쓴 상태로, 이를 찢어내 삶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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