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드링킹,그 치명적 유혹
지은이 : 캐롤라인 냅
옮긴이 : 고정아
펴낸곳 : 나무처럼
캐롤라인 냅(Caroline Knapp, 1959-2003)은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쌍둥이 자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화가였다. 아이비리그 브라운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유명 일간지와 주간지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녀는 취기 속에서 오랜 친구의 어린 두 딸을 재난에 빠뜨릴 뻔한 일을 계기로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Drinking』을 썼다.
책은 20여 년간의 술 속에 파묻혀 지낸 자신의 사랑․가족․섹스․우정․사회생활을 솔직하고 담대하게 그려냈다. 그녀는 겉에서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였다. 말수가 적어 단정한 인상을 주었고,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에서 업무를 계획성 있고 효율적으로 처리했다.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 우울증을 숨기고 완벽한 생활인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유형의 술꾼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서 자신의 직업영역을 보호하고, 삶 자체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환상을 유지했다.
나는 저자의 20년보다 정확히 두 배인 40년 동안 알코올을 탐했다. 한마디로 ‘진성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온 몸의 강렬한 결핍감이 들어차서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이 들지 않는다.’(87쪽) 나는 술자리를 찾아 미친 듯이 술을 마시다가 곧장 필름이 끊기고 통제력을 상실했다. 퍽퍽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몸의 세포들이 알코올을 급히 빨아드렸다. 그리고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자기연민에 빠졌고 멋대로 흐트러지고픈 마음에 휩쓸렸다.
나의 알코올 중독 증상은 술을 마심으로써 분노가 폭발하고, 속에 쌓인 말을 다 퍼부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술 깬 아침의 막막한 걱정, 무슨 짓을 했는지, 오전 내내 걱정에 잠겨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226쪽) 핵폐기물을 한 움큼 집어먹은 것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골이 깨질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며, 어제 술자리를 떠올렸다. 기억은 촌충 마디처럼 끊어졌고, 아예 통째로 날아가 버린 날이 비일비재했다. 술자리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어제 일을 캐묻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핸드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를 삭제한 일이 얼마였던가. 술이 취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마음에 쌓였던 울분을 마구 뱉아냈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인성은 황폐해 질때로 황폐해졌다.
지상의 모든 알코올 중독자들은 떠든다. “너라도 나 같은 처지라면 술을 마셨을 거야, 나는 술 마셔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하니까 마시는 거라고.”(259쪽) 정답은 인생이 추악해져서 술을 마셨는데, 인생은 더 추악해졌고 그래서 술을 더 마시게 된다. 그렇다. 여린 마음은 조그만 상처에도 술을 찾았고, 그렇게 힘든 순간을 피해 술 속에 떠내려갔다. 고통스런 선택을 피하려고 술을 탐닉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그 선택은 그대로 남았다.
술을 끊은 지 4년4개월이 흘렀다. 2019년 5월 1일 메이데이부터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기념일까지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간신히 여기까지 왔다. 이런 말이 있다. “금주는 무덤까지 참고 가는 것”이라고. 그렇다. ‘첫 잔은 바로 둘째 잔으로 이어지고, 둘째 잔은 다음 잔, 또 다음 잔으로 이어진다’(349쪽) 술을 끊은 초기의 금단현상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일부러 사고를 치고, 슬픈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까지 치밀었다. 남들에게 술을 끊었다고 공표했는데 그 민망함을 피하려는 기만이었다. 의지박약으로 다시 입에 술을 대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단이었다.
그녀는 금주에 성공하고, “밤에는 깊고 편히 자며, 아침에는 두통 없이 깨어난다. 사람들과 만나도 ‘지난번에 내가 저 사람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나?’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세워둔 곳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차에서 내려 잠드는 순간까지 차곡차곡 기억한다는 사실이 행복하다.”(371-3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