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지은이 : 정혜윤
펴낸곳 : 푸른숲
출간된 지 15여 년의 세월이 흐른 책은, 나에게 시사다큐 전문 프로듀서 정혜윤의 세 번째 책이었다. 부제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은 11명이었다. ‘활자중독자’ 인문주의자들의 삶을 만든 책들로, 각 인물의 정신적 행로를 그린 인터뷰 모음집이었다. 표지사진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아타가 찍었다.
짧은 리뷰는 내가 읽은 인터뷰이의 작품이거나 대표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책에 대한 생각, 그리고 인터뷰어의 단상을 담았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 『미학 오디세이』(전 3권) /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의 어린 시절』. 도서관에 가서 놀아 본 사람은 아무데나 가서 아무 페이지를 펼치면 다른 책의 인용으로 이뤄진 것이 책이란 것을 알게 된다. 독창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자기 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는 풍자를 수단으로 하는 공격이다.
소설가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 존 치버의 「다리 위의 천사」. 어떤 책은 그 책을 만나는 순간의 나 자신의 상황과 관련해서 의미가 있다. 그의 문장은 불안으로 가득한 삶 안에 공개되지 못한 열정이 숨어있다. 소설가 공지영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안셀름 그륀 신부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 우리 안의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이 왔다갔다 하는데 불안감이란 게 결국은 무언가를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란 걸 인정하게 된다. 그에게 책은 길이고 구원이고,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소설가 김탁환 - 『방각본 살인 사건』 / 김승희 『왼손을 위한 협주곡』. 기억하는 것보다 망각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게 인생이고 소설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책이나 글이 자신과 꼭 닮은 영혼이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 영화감독 임순례 - 〈와이키키 브라더스〉 / 폴 오스터의 『달의 정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 한정되었고 복잡한 속내도 알지 못했는데,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정말 노래로 표현되기를 원하는 것은 후회와 탄식과 해답을 구하지 못한 생각들일지 모른다.
소설가 은희경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밀란 쿤데라의 『느낌』. 잡념이 사유로 바뀌는 순간 인생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의 사고방식들이 그때 많이 생겨났다. 읽었던 것들의 지혜가 끝나는 순간의 새로운 깨달음이 독서. 철학자 이진경 -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 『벽암록』.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사회주의 붕괴를 이해할 방법이 없어 마르크스주의 바깥에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 그의 자리는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든 항상 떠날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것에 달려있다.
다큐멘터리 작가 변영주 - 『낮은 목소리』(3부작) /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손잡고 다정하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학과 영화는 그녀를 지탱하는 두 축이 되었고, 문학은 인생의 망원경이었다. 소설가 신경숙 - 『풍금이 있던 자리』 /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어떤 작가의 책들을 모두 읽어보길 권한다. 한 작가의 한 세계가 나의 핏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정열이라 부르는 것은 영혼이 힘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 세계와의 마찰이다.
영화배우 문소리 - 〈오아시스〉 /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근심거리가 있으면 많이 흔들리는 편으로 그럴 때 책을 읽는다. 인간적 약점 때문에 오히려 한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매력 있는 지점을 알아낼 수 있다. 한국학자 박노자 - 『박노자의 만감일기』 /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노자와 장자는 권력 관계가 많이 완화돼 거의 없어진 공동체적 사회를 이상사회로 보고, 과도한 착취와 전쟁을 반대했다. 그에게 책은 타자와의 소통,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것.
시사다큐 PD는 말했다. “전 ‘어떤 책을 애독하는가’로 그 사람의 취향과 매력을 가늠해요. 서재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느냐, 어떤 책에 홀려 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훨씬 정확하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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