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지은이 : 레프 똘스또이
옮긴이 : 이강은
펴낸곳 : 창비
창비가 뒤늦게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잡은 책들은 《민음사》와 《열린책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2012년 《창비》는 소설 11권을 1차분으로 내놓았다. 책은 초판 1쇄의 ‘창비세계문학 7’이었다. 그동안 나는 레프 똘스또이의 소설은 『안나 까레니나』(민음사), 『톨스토이 단편선 1․2』(인디북)를 잡았을 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꼴라 에비치 똘스또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1910)의 중단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이제야 펼치다니. 표제에서 나는 급진적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년)를 떠올렸다. 중편소설은 항소법원 판사 이반 일리치 골로빈이 마흔다섯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생을 그렸다.
판사로서 성공한 인생을 달려온 이반 일리치는 정점에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음으로 떨어졌다. 소설의 시작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통보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머리속은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 공석으로 생긴 보직이동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여념 없다. 이어서 이반 일리치의 삶과 발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반 일리치는 어려서부터 사교계의 최고위층 사람들에게 이끌려 본능적으로 그들의 습관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몸에 익히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법을 앞세워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위의식, 법정에 들어서면 부하직원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는 존경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 등 모든 것에 기쁨을 가졌다. 결혼 십칠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연봉 5000루블에 이사비용 3500루블까지 보장받는 새로운 도시의 직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고풍스런 집을 구해 이사하면서 그가 먼저 홀로 도착해 집 단장을 시작했다.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이다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옆구리를 부딪는 작은 사고를 당했다.
통증은 심했지만 금방 가라앉아 그는 별스럽게 생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옆구리 통증이 심해지고 병세가 악화되었다. 아는 모든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지만 그들은 모두 정확한 병세를 짚어내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 과거의 추억만을 떠올리며 그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막바지 그가 내지르는 고함과 비명이 사흘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졌고, 주위사람 모두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고 고통을 벗어나 죽음에 이르렀다.
소설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앞에서 근대적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양식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도구적 삶으로 전락한 인간의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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