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행복한 난청
지은이 : 조연호
펴낸곳 : 난다
나는 한때 눈에 불을 켜고 농업․농촌․농민시를 찾았다. 그때 눈에 뜨인 시집이 『농경시』(문예중앙, 2010)였다. 하지만 시인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난해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시인은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여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고, 두 권의 산문집을 냈다. 나는 첫 책이었다.
『행복한 난청』의 초판본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로 출판사 《난다》에서 15년 만에 개정증보했다. 부제가 ‘음악에 관한 산문시’였다. 나는 『장정일의 악서총람樂書總攬』을 떠올리며 온라인 서적 가트에 넣었다. 역시 시인의 글은 난해했다. “이것은 음악에 대한 나의 소견이다. 나는 이것을 음악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이 산문인지 시인지 혹은 소설인지는 당신이 판단할 일이다.” 나는 판단했다. 산문이다.
책의 구성은 서序-「곰방대를 든 연당여인蓮塘女人」과 종終-「처네를 쓴 여인」의 소제목은 조선후기 풍속화가 혜원蕙園 신윤복의 그림이다. 본문은 23편의 글이 실렸다. 스무 편의 글에 전위적인 외국 뮤지션의 앨범 20건을 소개했으나, 나에게 하나같이 생경했다. 코프리프슈티차 산촌山村을 중심으로 불가리아 몇몇 지역에서 보름 넘게 펼쳐지는 민속축제에서 채록한 음반으로 직접 녹음과 편집한 민속음악 여러 곡이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2001, 그리스인 제프 맹검의 《Orange Twin Field Works Vol.Ⅰ》.
1969년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최초의 아방가르드/일렉트로니카적 상황’을 만들어낸 그룹 화이트 노이즈의 첫 앨범 《An Electric Storm》. 전방위 예술가 로리 앤더슨의 아방가르드․미니멀․일렉트로니카․엠비먼트적 앨범으로 다수의 콘서트 중에 만들어진 곡들에 대한 일종의 스튜디오 버전 1982, 《Big Science》. 횔더린의 1972, 《Hölderlins Traum》. 하모니아&브라이언 이노의 1976, 《Tracks&Traces》. 서인도제도 바하마 출생의 엑수머는 부두VOODOO교 사제․음악가․화가․현실비판 지식인으로 시적인 가사, 주술적인 음악,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부두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파. 1970, 《Exuma》.
캐나다 포크-프로그레시브록 그룹 하모니엄의 앨범 1975, 《Si on avait besoin d'une cinquiéme saison》. 그리스 아테나 출신 애저 레이 2002, 《Burn and Shiver》. 유목민의 땅 러시아 투바공화국은 중앙아시아의 작은 나라, 티베트 만트라적인 극저음의 목소리와 민속악기로만 연주하는 그룹 홍후르트. 1994, 《The Orphan's Lament》. 500년된 옛 노래를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앉아서 노래부르는 에디오피아 여가수 어스터르 어워크 2004, 《Aster's Ballads》. 호크윈드의 Space Rock의 완성과 환각으로 가득찬 사이키델릭의 우주 1973, 《Space Ritual》.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영상의 작가주의적이고 파격적인 다다이즘과 퍼포먼스 그룹 사이키 TV 1982, 《Force the of Chance》. 스웨덴 전통민요에 포크 음악을 얹은 가르마나 1993, 《Vittrad》. 펑크와 힙합 톰톰 클럽 1981, 《Tom Tom Club》. 1931년생 노구老軀로 길게는 50분 가까이 쉬지 않고, 앉아 노래 부르는 키쇼리 아몬카르 2003, 《Samarpan》. 마그네틱 필드즈의 세 장의 CD에 담은 69개의 관대하고 모진 사랑 노래들 2003, 《69 Love Songs》.
후대 수많은 음악 장르의 원형질 미국 남부 미시시피강 삼각주 델타 블루스 태동기의 정점 블루스 연주자 로버트 존슨 1990, 《The Complete Recordings》. 수십 년 만에 앨범과 함께 나타난 구슬픈 음성과 투박하게 연주하는 아프리칸 블루스의 노인네 부바카르 트라오레 1990, 《Je Chanterai Pour Toi》. 성인으로 추앙받는 프랑스 식민지 세네갈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끈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종교지도자 아마두 밤바의 시적인 전언에 곡을 붙여 노래한 세네갈 뮤지션 무사디엠 칼라 1996, 《Shakawtu》. Nikhil Banerjee 1998, 《Raga Malkauns》.
아티스트의 앨범 감상평이 들어있지 않은 글의 소재는 작가 한유주의 첫 소설집 『달로』와 ‘요가 선생을 둘러싼 담론’ 두 편이다. 시인은 말했다. “잘 만들어진 음악의 다수는 듣는 이와 만드는 이 사이의 왜곡을 매개로 한다. 자연음은 ‘음향’은 될 수 있어도 ‘음악’은 될 수 없다. 연주자와 청자 사이에 규약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야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한줌은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는 반면, 음반에 담긴 바람 소리만으로는 ‘음악’이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57쪽)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中國歷代詩歌選集 2 (1) | 2023.12.27 |
---|---|
中國歷代詩歌選集 1 (1) | 2023.12.26 |
개를 위한 노래 (1) | 2023.12.21 |
이반 일리치의 죽음 (0) | 2023.12.20 |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1) | 2023.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