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지은이 : 김성장
펴낸곳 : 걷는사람
시인이 생소했다. 표제가 눈길을 끌어 군립도서관 열람실에서 뽑아든 시집이었다. 시인은 오히려 서예가로 알려졌다. 석사논문이 「신영복申榮福 한글 서예의 사회성 연구」였다. 고인故人의 제자로서 그의 사상을 실천하는 서예가였다. 「처음처럼」(73-74쪽)의 1연이다.
추사 이후 새로운 붓 신영복 교수가 / 처음처럼이라고 썼을 때 / 처음처럼 살지 못하는 나무들이 멈칫했다 / 갈필의 온건이 좌파를 다독거리며 / 벽에 걸린 글씨가 벽을 부술 듯 격렬했던 순간
나는 詩를 읽으며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을, 선생의 출옥 후 가장 먼저 출간된 국토와 역사에 관한 사색 『나무야 나무야』(돌베개, 1996)를 떠올렸다.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은 첫 시집 『서로 다른 두 자리』(1994) 이후 무려 25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은 1984년 대구지역 젊은 시인들이 만든 동인지 『분단시대』에, 1988년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분단시대』 창립멤버인 시인 김용락은 해설 「다채로운 사색과 사유의 꽃밭」에서 “인간을 포용하는 원용과 사무사, 역사에 대한 간결한 투쟁의지, 참회와 같은 자기성찰, 섬세하고 아름다운 회화적 기예 언어, 끈으로 묶인 것 같은 운명적인 가족과 가난에 대한 회오, 실존에 관한 깊은 연민을 읽을 수 있는 시들”(158쪽)이 가득하고 평했다. 표사는 시인 유영록이 몫이었고, 4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다.
마지막 시 「나팔꽃-목숨의 길에 서서」(124-129쪽)은 시인의 역사인식을 담은 장시였다. 시인은 충북 옥천출신으로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펴낸이 김성규(시인)의 동향이었다. 옥천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다. 마지막은 표제를 따온 「파닥거리는 슬픔」(20-21쪽)의 전문이다.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 소금과 생애가 만나 짭짤해질 무렵 // 어깨의 해안에 밀려와 출렁이는 파도 // 슬픔은 초승달 주기로 찾아와 부서지지 // 등에 부서지며 가파른 벼랑을 만들고 // 다음 생이 기어오를 만한 낭떠러지를 만들고 // 튕겨 오른 물방울이 눈썹의 숲을 적시지 // 슬플 때만 둥글어지는 해안을 지나 // 날개를 접는 새처럼 파닥파닥 // 손등에 와서야 안심하는 밀물의 쓸쓸 // 움켜쥔 생애를 놓으며 말라가면 거기 // 하얗게 부서진 소금 가루 더 이상 // 야위지 않아도 되는 체온 식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