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회상의 열차를 타고
지은이 : 강만길
펴낸곳 : 한길사
1937. 8. 21. 스탈린의 지시가 떨어졌다. 원동遠東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였다. 독립운동가․지식인 등 고려인들의 지도자 2,800여 명은 불시에 체포됐고 총살당했다. 말과 소를 운반하는 화물열차 한 칸마다 80명 정도가 빼곡하게 태워졌다.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다. 연해주 일대 고려인 17만 여명은 1937. 9. 1.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하루아침에 집과 고향에서 버려져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강제로 실렸다. 그들은 길게 50여일 동안 6천㎞을 이주했다. 허약자와 어린이들이 이주 과정에서 죽어나갔다. 고려인들이 도착한 땅은, 지금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허허벌판이었다. 눈보라가 퍼붓는 추위 속에서 땅굴을 파고 그해 겨울을 났다. 기아를 못 이기고 낯선 땅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구구성에서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은 10만3천명으로 아홉 번째,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약 18만3천명으로 여덟 번째로 많았다. 러시아고려인협회와 한국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고려인의 강제이주 여정을 되짚은 ‘회상의 열차’ 행사를 가졌다. 97. 9. 10.부터 10일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 열차로 이동하며 고려인의 통한의 역사를 더듬었다. 『회상의 열차를 타고』는 역사학자 여사黎史 강만길(姜萬吉, 1933-2023)의 구소련 지역 동포사회의 역사적 내력을 조사하고, 강제이주 여정을 따라가는 답사기였다.
러시아 땅에서 태어난 고려인들은 해방투쟁의 일환으로 적군赤軍에 투신하여 백군과 일본군과 싸웠으나 스탈린은 숙청 과정에서 많은 고려인들의 지도자들을 총살시켰다. 최초의 조선인 사회주의 단체 한인사회당을 창립한 김알렉산드리아. 게릴라부대장으로 백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하바로프스크 거리의 이름이 붙여진 김유천.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주도한 이동휘. 1921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을 창립한 한명세와 김만겸. 조선인 빨치산 부대를 조직 올가만 해방 전투에 참가한 한창걸. 1917년 2월혁명 후 소비에트 위원, 1923년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소수민족부장 남만춘.
80년대 나는 『창작과비평 영인본』을 통해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다. 역사학자의 첫 사론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은 분단사학의 반성과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론 정립으로 인문사회과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창비》는 2018-20년동안 ‘강만길 저작집’ 18권을 출간했다. 『회상의 열차를 타고』는 시리즈 열한권 째였다. 내가 잡은 책은 《한길사》에서 나온 1999. 1. 10. 제1판1쇄였다. 부제가 ‘고려인 강제이주 그 통한의 길을 가다’였다.
‘창밖에 벌어지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자작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있으며, 그 중간 중간 파아란 소나무가 서 있는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다.’(123쪽) 커버를 벗기면 나타나는 표지의 흑백 표지그림이었다. 책을 열면 고려인 사회를 이끈 지도자와 ‘회상의 열차’ 여정을 담은 도판 25점이 실렸다. 가장 마지막 사진에 눈길이 갔다. 모스크바 대학 박 미하일 교수를 중심으로 성대경․강만길 교수가 좌우에 섰다. 박노자는 2001년 한국에 귀화했다. 그의 이름 露子는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지었고, 성씨 朴은 스승 박 미하일 교수를 따랐다고 한다. 나의 독서 편식에서 박노자의 책은 앞뒤 따지지 않고 무조건 손에 넣었다. 그렇게 역사인식은 80년대 강만길에서 2000년대 박노자로 깊어갔다. 마지막은 역사학자가 ‘회상의 열차’를 타고 가면서 느낀 회한어린 슬픔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마치 사지로 끌려가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길을 따라 가본다 한들 조국을 잃고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의 절망과 비애를 만분의 일이라도 옮겨받을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일 것 같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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