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대빈창 2024. 7. 25. 07:00

 

책이름 :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지은이 : 성완경

펴낸곳 : 열화당

 

내가 잡은 책은 초판 1쇄로 1999. 1.에 나왔다. 여지없이 책술에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의 심벌마크가 파란잉크로 찍혔다. 붉은 잉크 고무인의 구입 날짜는 흐릿해서 알 수가 없었다. 분명 표제의 ‘민중미술’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부제는 ‘새로운 현대를 위한 성찰―성완경의 미술비평’으로 지난 20여 년 간 쓴 글들에서 엄선한 21편이 3부에 나누어 실렸다.

1부 ‘민중미술의 시각’은 한국 현대미술의 전근대성을 깨고, 소통하는 미술의 힘과 민중미술적 시각의 글 9편을 실었다. 외형과 실제 사이의 괴리는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문화 자체로 그 뿌리가 깊다. 괴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정부․언론․기업․학계 등의 연합적 캠페인에 국민적 합의를 쉽게 이루며 정해진 목표로 돌진한다. 철학적 관조주의 미술은 표현형식이 표면상 혁신적․개방적이지만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보수주의로 극우적 색채를 띤다. 최근 한국미술은 사회와의 통합기능에서, 장식의 기능으로 전치轉置되는 파행적 궤적이 심화되고 있다.

화폐가치와 문화가치의 자동적 연계는 대중을 예술로부터 소외시키는 주범이다. 제도 미술교육의 병폐와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의 잠재적인 표현능력을 개발하며 나아가 민중을 살아있는 예술의 표현주체로 세우는 민중미술. 민중적 삶의 주체성과 민족사의 정치적 향상 속에 뿌리내리려는 80년대 민중미술 작가. 〈현실과발언〉, 〈임술년〉, 〈두렁〉. 민주화의 도정에 활력을 불어넣은 진보적 창작예술의 문화적․정치적 파급력. 국립현대미술관의 「민중미술 15년전」은 하나의 사건.

2부 ‘모더니즘의 쟁점’은 서구 현대미술의 수용 양상 비판과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쟁점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6편의 글의 담았다. 아방가르드의 도발은 결국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적 가치를 비현실의 공간 속으로 감추는 역할. 서구 근대사회의 미술은 사회와 문화의 소통수단으로 기능을 수행. 플럭서스Fluxus는 전통적인 매체나 장르의 확립된 권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실험적이고 혼혈적인 매체혼합형 예술형식. 미술관은 재보의 수화자로서의 목적을 지닌 것. 예술가들은 전통적 표현수단의 한계를 넘어 보다 새로운 도구․방법․지식을 써서 자신의 작업을 확장. 1990년대는 멀티미디어로서의 비디오 아트의 시대.

3부 ‘시각문화의 도전’은 사진․애니메이션․만화․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와 벽화운동․공공미술에 관해 다룬 글 6편을 모았다. 사진이 현실에 대해 접근한다기보다는 사진이 현실 자체로 된다. 현실이 사진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에밀 레노Emile Reynaud의 프락시노코프praxinoscope는 그림이 움직이는 그래픽 시네마이고,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사진으로 촬영된 실재 세계가 움직이는 포토그래픽 시네마. 그림과 문자의 결합 또는 보여주며 말하기는 가장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전달형식. 1967년 2월 미국 시카고 ‘블랙 벨트Black Belt’의 〈존경의 벽Wall of Respect〉은 수많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의 주거지에 출현한 벽화운동의 출발.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단지 건축물의 허가와 준공 요건을 구성하는 한 단위, 건축규제나 마찬가지의 규제 대상. KBS의 〈문화가 산책〉은 문화의 인테리어화․사물화를 통해 문화대중을 문화로부터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고故 성완경(成完慶, 1944-2022) 선생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재야와 제도권 모두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미술평론가였다. 그는 1980년대 한국미술의 물꼬를 튼 ‘현실과발언’의 창립동인으로 민중미술계의 대표적 논객이었다. 이기웅 열화당 발행인은 미술평론가를 이렇게 기렸다. “그는 말이 많을 만한 평론가였지만 말수가 매우 적었다. 평생을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많이 쓰고, 또 많이 모았으나 하실 말씀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자신의 말은 매우 아껴서, 분명하고 적확하게,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표현하곤 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 없음의 과학  (55) 2024.07.29
조상 이야기  (57) 2024.07.26
꿈속의 꿈  (54) 2024.07.24
마법의 비행  (59) 2024.07.23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60)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