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니들의 시간

대빈창 2024. 8. 16. 07:00

 

책이름 : 니들의 시간

지은이 : 김해자

펴낸곳 : 창비

 

『해자네 점집』(걷는사람, 2018), 『無花果는 없다』(실천문학사, 2001)에 이어 나의 손에 들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앞의 두 권은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고, 『니들의 시간』(창비, 2013)은 온라인서적에 구입했다. 한국 민중시의 도도한 물결을 이어간다는 시인에게 나는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시인은 문단에 나온 이래 한결 같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고, 문학평론가 송종원은 해설 「사람의 필요」에서 “자신의 삶을 작품에 함께 걸어두고 읽게 하는, 두 눈을 뜨고 읽게 된다. 한 눈은 작품에, 다른 한 눈은 자신의 삶에 두고 읽는 시집”(129-130쪽)이라고 말했다. 시인 안희연은 표사에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숨통을 조여오는 현실이, 가혹한 매질을 견디는 존재가 보인다”고 했다.

「그는 아들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헬기까지 동원된 전쟁을 방불케했던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 강제진압을, 「수철리 산 174-1번지」는 한국전쟁에서 우익단체의 양민학살을, 「다녀오겠습니다」는 2020년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을, 「감긴 눈꺼풀 곁에서」는 2022년 이태원 참사를, 「두통의 환각」은 2016년 비정규직 노동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2018년 하청노동자 김용균 사망사고를, 「내 이름은 아르카」는 체르노빌․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을, 「비명 곁에서 비명도 없이」는 제주4․3항쟁 백비白碑를, 「아무리 나눠도」는 교통사고로 양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 가장을, 「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태평양 방류를, 「공양供養」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어 도망쳐 백두대간아래 오십년을 숨어산 노인을.

시집은 ‘시대의 고통과 슬픔을 관통하는 역사 인식과, 폭력과 탐욕으로 얼룩진 야만적 현실을 적시하는 냉철한 시선으로 가득’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붓꽃그림, 시인 파울 첼란의 아우슈비츠,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 「당신이 촛불입니다」는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의 2주기에 바친 추모시까지.

「시간 여행」 연작시에서 시인은 개인과 시대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부제가 ‘철망 속 그 눈동자’는 광주 5․18 직전 서울역 대학생들의 시위를, ‘옷장 안에서 야근을’은 1987년 국민대항쟁 투쟁전단을 만들어 뿌리고 선동했던 현장노동자 유춘열을, ‘소파 타도’는 어느 대학생의 파쇼타도 스프레이 글씨에 얽힌 에피소드를, ‘철로 옆에 연탄방’은 시인의 인천 노동운동 시절을 회고했다. 마지막은 모든 생명들이 평등하게 공생하는 텃밭을 노래한 「연푸른 혀들」(42-43쪽)의 1․2․4․5연이다.

 

이른 아침부터 참새도 할 말이 많다 중구난방 화합장이 된 이 집 지붕은 누구 것인가, 하품 늘어지게 하며 묻는 사이에도 우르르 날아오는 이 밭은 무료 급식소, 옆집 굴뚝에 세사는 딱새들이 쪼아 먹어도 군말이 없다 // 황금조팝 겨드랑이에서 노란 혀들이 솟아나고 있다 진군명령 없어도 알아서 포복한다 잔디는 일렬횡대로 어깨를 겯고 부추도 장딴지에 힘을 준다 뿔이다 안간힘으로 밀어 올리는 푸른 비명이다 멍이다 숨어 지내던 갓도 깃대를 세우고 사철나무에 더부살이하던 더덕도 혀를 내민다 뽕나무 그늘 귀퉁이에 서 꽃마리가 떨고 제비꽃이 수줍게 환호한다 // ······ // 아무도 명령하지 않지만 법은 지켜진다 / 찌르지 않는다 화살나무 가지마다 화살 빽빽해도 / 상사화 잎과 긴병풀꽃은 무사하다 // 잔디 파고들어도 개망초 밀어붙여도 저마다 일가를 이루었다 옹색한 지하방 붙어 잘수록 식구도 늘었다 온몸이 굴삭기인 지렁이도 새끼를 쳤다 바위가 엉덩짝 하나 내주어 고향도 본적도 모르는 초롱꽃과 돌나물도 문패를 달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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