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간 단군을 찾아서
지은이 : 최태영
펴낸곳 : 학고재
77세 ‘한국 고대사 연구’ 시작, 88세 『한국 상고사 입문』․100세 『인간 단군을 찾아서』․102세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 출간. 한국 근대 법학의 기틀을 다진 법학자 최태영(崔泰永, 1900-2005)은 말그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삶을 통해 보여준 인물이었다. 책은 ‘학고재 산문선 12’로 만 100세를 맞은 선생의 회고록이었다. 정리자 김유경이 낯익었다. ‘학고재 신서 20’으로 출간된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의 옮긴이였다. 4장에 나뉘어 43편의 글을 담았다.
서문 「바른 역사가 서길 바라며」에서 “장련長連 우리 동네가 구월산九月山에 있어서 읍내에 단군조선과 인연이 깊은 솟대백이가 있고 아사나루, 아사신당 이런 것”(6쪽)이 선생의 어린 시절에 각인되었다. 1장 구월산. 자수성가한 조부 최계준. 광진학교의 김구. 언더우드 1세가 세운 경신학교 입학생 첫째․둘째는 김규식, 안창호.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 막후인물 이용식․전덕기. 구월산 솟대백이의 환웅․환인․단군을 모신 사당 삼성사三聖祠.
2장 내가 겪은 20세기. 1913년 경신학교 보결 편입. 1917년 경신학교 12회 졸업생. 메이지대학 검정고시로 예과(영법과) 입학. 1920년 전후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은 1천명 가량. 장련 3․1만세운동 주도로 감옥, 3개월 뒤 석방. 처가집안 만석꾼 김씨 문중은 재령, 신천, 안악 일대의 해안 갈밭 개간사업으로 10년간 25만석 추수. 1925년 조선인 최초의 정교수로 보성전문 상과․법과 교수. 국내 대학 최초의 학문연구지 보전학회논집 제1집(1934. 3.) 발간. 1938년 경신학교 경영권 인수. 총독부 주최 ‘일본어 상용 완전 실시 방책 토의’에서 일본어 상용화 반대 연설. 1922년 조만식 물산장려운동에 이어 1929년 2차 물산장려운동 주도. 3장 해방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의 대법관직․초대 주일대사․법무감 거부. 한국전쟁당시 북한의 암살․납북자 명부 182번째 대상. 양주동의 향가 연구의 시발점이 된 어릴 적 나무꾼의 노래. 3․1 만세운동 후원, 신사참배 거부의 개신교 선교사들과 인연.
4장 한국사 연구의 장. 단군은 서기전 2333년 지금의 중국 땅 요동에서 고조선을 개국하고 2096년간 47대에 걸쳐 통치해 온 임금들. 배달왕검에서 배달은 박달나무, 왕검은 임금을 가리키는 한문식 명칭, 고조선은 최초의 단합된 민족국가. 일본 국내청 소장 『상기上記』에 일본에 건너온 한 단군자손의 73대 손이 일본 진무(神武) 일왕이 되었다는 기록. 단군조선 이전에 환국이란 신시神市 시대가 1565년간 지속. 마지막 환웅 대에 단군(배달임금)이 환국을 무력통일하고 2333년간 아사달(지금이 하얼빈)에서 조선이라는 광역국가를 개국. 평양 숭령전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을 조상으로 섬겨 국가적 의례로서 제사를 지내던 곳. 권도가 1436년에 찬한 단군에서 고려 공양왕까지의 치적을 기록한 「동국세년가」(『표제음주동국사략』의 첫머리에 기록). 변조되기 전 『삼국유사』의 기록은 “옛날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일본 후지산 지하서고에 1200년 동안 보관되어온, 〈고사기〉, 〈일본서기〉보다 약 1백년 앞서 씌어진 〈미야시타宮下 문서: 신황기新皇記〉의 기록에 가야계 한국인으로 7세기 일본의 실제 통치권자 소가(蘇我). 〈일본서기〉의 원전은 우수한 진짜 전기 역사라는 뜻의 『수진전秀眞傳』. 가림토 문자는 〈단군세기〉에 3대 단군 가륵嘉勒이 경자 2년(서기전 2181년)에 을보륵乙普勒에 명하여 만든 정음 38자. 가림토 문자는 1442년 세종대에 38음에서 10자가 준 28음의 훈민정음으로 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