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랑을 놓치다

대빈창 2024. 9. 13. 07:00

 

책이름 : 사랑을 놓치다

지은이 : 윤제림

펴낸곳 : 문학동네

 

낯선 시인의 시집을 두 권째 잡았다. 나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를 먼저 펼쳤다. 『사랑을 놓치다』는 『황천반점』을 내놓은 후 4년 만에 펴낸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62편이 실렸다. 시인 홍신선은 해설 「청산옥, 혹은 천지팔황의 담론들」에서 “시의 문장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다. 그리고 힘이 있다. 그 힘은 주로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그것도 전혀 유사성이 없는 것들을 폭력적으로 치환하는 은유 형식에서 온”(99쪽)다고 했다.

표사는 낯익은 두 시인이 부조를 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신경림 시인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작고 하찮은 것들이다.······. 그 작고 하찮은 것들 속에서 사람이 사는 참다운 뜻과 기쁨을 찾아내고 있다.” 시인 이문재는 “그의 시선은 웅숭깊다. 그 웅숭깊음이 주름이어서 멀고 가까운 것, 높거나 낮은 것들을 다 품어낸다.”

시집은 기행, 그림,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소재를 취했다. 시인의 발길은 이 땅의 쌍봉사, 백담계곡, 장릉, 법흥사, 청령포, 정선, 여량, 소래포구를 거쳐 갠지스강, 나란타사, 티벳고원까지 나아갔다. 연작시가 눈에 띄었다. 「천축일기」 2편, 「함께 젖다」 2편, 부제가 ‘청산옥에서’가 붙은 연작시가 13편이었다. 표제시 「사랑을 놓치다」의 부제는 ‘청산옥에서 5’였다. 청산옥은 시인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는 음식점일 것이다.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정황과 일들을 묘사하고 진술했다.

앞날개 이력을 보며 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시인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나는 제천하면 의림지가 떠올랐다. 시인의 본명은 윤준호였다. ‘제천 의림지’에서 필명을 따왔는지 모르겠다. 윤. 제. 림. 마지막은 「화가 장씨가 그림을 그릴 때」(15쪽)의 전문이다. 여기서 장씨는 화가 장욱진(1917-1990)이었다.

 

참새랑 까치는 / 자기네는 안 그리는 줄 알고 / 그냥 가려는 중이고, / 앞뜰의 둥그란 나무와 / 머리끝이 뾰족한 나무는 / 짐짓 바른 자세로 섰는데, / 알자지 어린아이와 말라깽이 강아지는 / 뭐하는 할배인가, / 빤히 올려다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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