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지은이 : 서현
펴낸곳 : 효형출판
25년 만에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효형출판, 1998)를 다시 펼쳤다. 건축가 서현(徐顯, 1963- )이 새롭게 다가왔다. 군립도서관 홈페이지에 건축가의 이름을 입력했다. 서너 권의 책이 떠올랐다. 신간도서는 희망도서를 신청했다.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1999)는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건축 관련 이야기 ‘우리 거리 읽기’를 책으로 묶었다.
글들은 서울의 주요 거리와 지방의 몇몇 주요 도시들의 거리에 깃든 역사의 흔적, 외세에 의해 일그러진 모습이 남아있는 발자취, 막무가내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투영된 실상, 재벌과 거대자본․외국 기술이 합작으로 빚어 낸 어색한 거리 등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종로, 세종로, 수원 화성, 덕수궁길, 소공로, 전주, 인사동길, 태평로, 군산, 청계천, 서울 남대문시장, 부산 광복동, 대학로, 신촌길, 광주 금남로, 이태원길, 여의도공원, 영등포역, 청량리역, 테헤란로, 압구정동과 간판, 한강다리, 강남의 보도步道, 일산 주택단지, 거리의 풍경에 대한 26편의 글이 실렸다. 건축가가 인문학적 지식과 새롭고 다양한 시각으로 거리의 이면을 읽어낸 도시건축 문화비평서였다.
종로는 삼성생명 건물 유형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고 실험을 할 곳이 아니다, 남의 눈에 잘 띄어야한다는 주판알 너머로 육백년 역사가 보일 수 없다. 세종로의 정부종합청사, 문화관광부, 주한미국대사관은 세종로에 벽을 치고 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차장 면적만 빼내도 세종로 한 가운데는 시민의 거리가 될 수 있다.
수원천을 가두는 까마득한 축대를 헐어내야 한다, 수원천에 맑은 물이 흐르고 시민이 손닿는 곳에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수원천은 살아난다. 덕수궁 돌담 옆의 해자垓字는 메워졌고 고궁의 담은 옮겨졌고 대한문은 뒤로 물러났다, 이 길에서 권력의 현실과 역사의 교훈을 읽어야한다.
소공로는 일본인들이 인력거를 타고 통과한 권력과 재력의 길이었다, 아직도 시청 앞과 남산터널을 연결하는 통과도로 그대로다. 전통건축을 재현한다고 콘크리트 건물들 모두 기와를 얹고 있다, 전통은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으로 번안되었다.
인사동길은 차 없는 거리가 되어야한다, 전통은 보여주는 객체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오고 우리가 사는 방법이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모든 환영 퍼레이드가 태평로를 관통하니 선전물로 번듯한 건물들이 필요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부터 숭례문까지 덩치 큰 건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군산의 일식 건물들은 보조되어야 한다, 아름다워서가 아니고 서럽던 우리의 백년을 고스란히 이야기하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기보다 가려왔다, 미국을 흉내 내는 것은 이 땅에서 길이요 진리였다.
시장은 관광지이기에 앞서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이다, 새 건물은 수직적으로 쌓아놓은 컨테이너 박스가 아니고 세워놓은 거리가 되어야한다. 자동차를 가지고 올 엄두를 낼 수 없는 곳․누구나 평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이 제대로 된 도심의 모습이다.
이 땅의 상업주의는 항상 꼬부라진 이름과 함께 등장했다, 비틀린 현실을 굳이 외면하고 환상 속의 이국으로 도피하고 싶기만 하던 암울한 젊음은 계속될 뿐이다. 보행자들의 길을 구석으로 내모는 이는 누구인가, 차분히 나이를 먹고 나이의 품위를 지키기에 우리의 거리 상업주의는 너무 가볍다.
금남로에서 조각은 미술작품이기보다 남은 땅에 끼워 넣는 애물이 되었고, 조경은 건물과 거리를 갈라놓는 장애물이 되었다. 이태원의 풍경은 항상 두 얼굴이다, 낮의 풍경은 거리에 가득한 노점과 옷․모자가게이고 밤의 풍경은 네온사인 번쩍이는 환락가다.
현상공모 설계기간 한 달, 사업기간은 2년 7만평, 넓이에 276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둘러 만든 여의도 공원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열 명중 여덟 명이 반칙을 하는 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간판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도 피난 시기다.
영등포 거리는 인도도 차도도 턱없이 좁다, 인도 위에는 노점이 빼곡이 들어서 있고 걸을 수 있는 폭은 두 사람의 어깨너비를 간신히 넘나든다. 청량리역은 종착역이지만 지나가는 곳이다, 다른 교통수단으로 바꿔타고 또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거치는 곳일 따름이다.
한강의 다리들은 한민족이 20세기에 남긴 부끄러운 유산들이다, 1985년 한강종합개발공사는 이 다리들에 모두 대교大橋(?)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땅에서는 실업률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중요한 경제 지표였다, 정책의 초점이 분배가 아닌 성장에 있었다.
공유수면의 매립으로 건설 회사들의 사유재산이 증식되었고 그 땅위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대강 지어 빨리 파는 것이 길이요 진리였다. 굳이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공용주차장에 요금을 내고 차를 세우고 한두 블록 걸어다니는 것이 더불어 사는 도시생활이다.
정발산 주변 구릉의 단독 주택단지에 기상천외한 헐리우드 영화와 여행 사진책에서 보던 모습이 등장했다, 마당에 잔디를 심어 뜰을 만들고 자동차는 길에 세워 놓았다. 빨리 공사를 끝내고 떠나자는 생각만 가득한 이들이 나나타났다, 보드블록을 깔다보니 곳곳에 장애물(가로수, 가로등, 맨홀뚜껑...)이 나타났고 망치로 깨뜨려 그냥 깔고는 틈새는 콘크리트로 메웠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46) | 2024.12.04 |
---|---|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 (48) | 2024.12.03 |
예수 왜곡의 역사 (7) | 2024.11.28 |
풍경의 발견 (39) | 2024.11.27 |
나의 인생 나의 학문 (40) | 2024.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