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지은이 : 최종천
펴낸곳 : 창비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았을 때 / 어떤 사람 하나는 / 종이를 먹으며 배고픔을 견디었다고 했다 / 만에 하나 그가 / 예술에 매혹되어 있었다면 / 그리고 그에게 한권의 시집이 있었다면 / 그는 죽었을 것이다 / 그는 끝까지 시집 종이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 시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면서 / 서서히 미라가 되었을 것이다 / 그 자신 하나의 상징물이 되었을 것이다
「상징은 배고프다」(45쪽)의 전문이다. 그렇다. 이 詩였다. 아니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나는 이 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가 실린 시집은 온라인 서적에서 품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현장노동자가 펴낸 시집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할 수 없이 신간시집을 손에 넣었다. 『고양이의 마술』(실천문학사, 2011)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상작은도서관〉에서 시집을 발견한 나는 반색했다. 시집 물색에 혈안이 되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삼 온라인서적을 검색하니 시집은 재판을 찍어 구매할 수 있었다. 시인 최종천(崔鍾天, 1954- )은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첫 시집 『눈물은 푸르다』로 제20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문단에서는 ‘현란한 수사를 압도하는 현장의 체험과 노동계급의 뛰어난 시적 감수성을 완성도 높게 형상화’했다고 평가했다. 시인은 용접공으로 잔뼈가 굵은 노동자였다. 세 편의 연작시 「뱀 잡기」는 용접 노동 현장을 그렸다.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는 첫 시집 이후 4년 만에 펴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65 시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구중서는 표사에서 “사물을 인간화하는 과정을 시인은 노동이라 부른다”고 했다. 시인ㆍ문학평론가 맹문재는 해설 「실재의 미학」에서 “시인은 상징을 위한 상징을 추구하거나 거기에 함몰된 예술과 계급을 단호하게 비판... 시인은 실재를 이루는 토대로써 노동을 이야기한다. 노동이야말로 실재의 바탕이고 철학”(124쪽)이라고 보았다. 표제는 「투명」(32-33쪽)의 마지막 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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