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옛 그림으로 본 조선 ① - 금강
지은이 : 최열
펴낸곳 : 혜화1117
오랜만에 뭍에 나갔다. 여지없이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대여했다. 나는 항상 대여할 도서를 메모했다. 읽고 있던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 하편 다섯 권과 두세 권의 시집이 손수첩에 적혀 있었다. 신간코너에 얼핏 눈길을 주던 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선 반가웠다. 민중미술평론가 최열(崔烈, 1956- )의 두툼한 책 세권이 나란히 어깨를 겯었다.
80년대 민중미술 이론을 이끈 대표적 활동가였다.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메모된 책들을 뒤로 물렸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시리즈 세 권과 부피가 만만치않은 양장본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빼들었다. 이번 책읽기는 조선의 옛 그림에 푹 파묻힐 생각이었다. 24년 5월에 출간된 시리즈는 ①금강, ②강원, ③경기ㆍ충청ㆍ전라ㆍ경상 편으로 세 권의 책에 실린 도판은 1천점에 가까웠고, 1,520쪽에 다다랐다.
옛 그림을 원 없이 감상할 독서여정이었다. 더욱 미쁜 것은 2020년에 나온 『옛 그림으로 본 서울』과 2021년에 출간된 『옛 그림으로 본 제주』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첫째 권은 부제가 ‘천하에 기이한, 나라 안에 제일가는 명산’으로 금강산을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으로 크게 권역을 나누어, 조선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총망라했다. 서문 「신성한 땅, 금강의 기운」에서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 너머 금강이 품은 자연의 신성함을 옛 그림을 통해 느끼기” (6쪽)를 바랬다.
‘금강산을 그린 실경화를 집대성한 최초의 저술’은 서장과 1장 ~ 4장까지 스물두편의 글을 담았다. 서장―그리운 그곳, 우리 금강산.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의 『택리지』의 금강산 묘사를 인용하면서 글은 시작되었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최해(崔瀣, 1287-1340)의 문집 『졸고천백拙藁千百』에 ‘풍악이라 부르는 이 산을 중들은 금강산이라고 한다’에서 나왔다. 《해동명산도》는 김홍도의 《해산도첩》과 지명과 구성, 구도와 형상이 거의 같아 단원의 금강산 사생 연행 당시 그린 초본을 모은 것. 금강을 그린 화가들, 다녀온 이들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5),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1712-1786)외 29인.
1장 한양을 떠나 금강을 향하여.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1671년 총 31일 동안의 금강산 유람을 상세하게 남긴 「동유기」.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경기 포천을 지나 강원 철원에 들어서 금화, 평강, 금성, 창도, 회양을 지나 단발령에 이르는 길. 2장 내금강, 우아미의 향연. 단발령을 넘어 처음 마주한 절집 장안사는 아홉 명의 화가가 14점의 그림을 남김. 금강산 4대 사찰의 하나 표훈사를 그린 작품은 모두 여섯 점. 헐성루에서 금강 봉우리를 보는 구도의 작품은 모두 다섯 작가의 여섯 점.
금강대 너럭바위에 새겨진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의 글씨 ‘萬瀑洞만폭동’과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岳元化洞天’. 만폭동 또는 원화동천을 그린 여섯 명의 화가와 여섯 점의 작품. 진재 김윤겸의 〈묘길상〉은 실경으로 그린 최초의 작품. 선후배 화가가 나란히 서서 그린 김응환은 백탑동百塔洞을, 김홍도는 문탑門塔을. 높이가 50미터, 밑둥 지름이 20미터의 웅대한 다보탑은, 오직 1815년 김하종이 그린 《해산도첩》중 〈다보탑〉이 유일. 망군대 구역의 경물을 그린 그림은 정선의 두 점 〈혈망봉〉 뿐. 두 점이 전해지는 금강산 1만2천 봉우리와 계곡, 멀리 동해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금강의 주봉 비로봉을 그린 화가는 오직 정선뿐.
3장 외금강, 강경한 장엄미. 복헌 김응환의 《해악전도첩》 중 〈백정봉〉은 매우 사실에 충실한 실경. 옥류동 입구의 왼쪽 거대한 바위에 봉래 양사언의 ‘옥류동玉流洞 구룡연九龍淵’이라는 글자가 웅건하게 각자. 금강산의 4대 폭포 중 구룡폭포를 그린 그림은 13점. 표지그림은 집선봉의 북쪽 기슭을 그린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집선봉 북록〉, 일곱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동북 칠연봉을 옆으로 긴 구도로 설정해 한 화폭에 모두 담아 아주 장대. 유재 김하종의 《풍악권》 중 〈상발연〉은 벌거벗은 사람이 물장구치고 세 선비가 물놀이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4장 해금강, 기이한 절경의 바다. 김하종이 1815년에 그린 〈환선구지 망 총석〉에 그려진 고래 한 마리. 김하종이 1865년에 그린 《풍악권》 중 〈옹천〉은 화폭넓이 4분의 3 이상을 바다에 할애, 두 선비가 앉아 동해 일출을 조망. 정선은 서정성, 김홍도는 사실성, 김하종은 일상성을 그린 삼일포 실경화. 해금강을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은 1747년 무렵 넘실대는 파도와 바위 기둥 숲 사이를 유람하는 한 척의 배를 그린 《겸재화》 중 〈해금강〉. 해금강을 그린 최고의 걸작은 김홍도가 1788년에 그린 《해산도첩》 중 〈해금강 전면〉과 〈해금강 후면〉. 정선은 1747년에 그린 《해악전신첩》 중 〈칠성암〉은 바위 기둥을 마치 서로 바라보는 일곱 명의 군중처럼 묘사.
미술사학자 최열은 말했다. “조선시대의 실경산수화를 그린 분들은 풍경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풍경 속으로 자신이 들어갔다. 화가가 풍경 속으로 자기를 넣어버렸다. 아마 그분들 인생관, 철학이 그랬을 것이다. 감히 자신이 지배하는 풍경이 아니라 그냥 원래 우리가 하나였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자연, 우주의 일부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