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옛 그림으로 본 조선 ② - 강원
지은이 : 최열
펴낸곳 : 혜화1117
생경한 출판사는 이름도 특이했다. 《혜화1117》. 판권면을 펼쳤다. 주소(03068)서울시 종로구 혜화로11가길 17(명륜1가). 그렇다. 펴낸곳은 사무실이 자리 잡은 건물의 도로명 주소였다. 이현화 대표가 편집자ㆍ영업자ㆍ관리부 업무까지 다하는 1인출판사였다. 2020년 펴낸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 대한 독자들의 성원이 출판사가 자리 잡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4년 전 출판사는 8권의 책을 펴냈었고, 지금도 십년이 채 안된 신생출판사였다.
자칭 활자중독자로서 책을 찾을 때 필히 검색할 출판사 한 곳이 나의 뇌리에 추가되었다. 배포가 남다른 출판사 대표가 고마울 뿐이다. 책판형은 180x235mm, 인쇄와 고급종이까지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었을 것이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시리즈 세 권은 압도적 분량의 옛 그림을 통해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앞부분에 지역을 직접 발로 밟은 화가와 인물을 배치했다. 지은이가 직접 손으로 그린 세부 지도는 특별한 부분이었다.
둘째 권은 부제가 ‘강원이여, 우리 산과 강의 본향이여’로 먼저 관동팔경의 유래와 의미를 살폈다. 옛 그림에 담긴 옛 사람들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미술사학자는 서문에서 말했다. “강원도는 사람의 땅의 아니라 하늘의 땅으로 사람을 살리는 대지의 모신이요 생명의 땅이다”(4쪽) ‘국내에서 강원도 실경화를 집대성한 최초의 저술’은 서장과 1ㆍ2장에 17편의 글을 담았다.
서장―강원, 깊고 넓어 끝없이 아득한 땅.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은 『택리지』에서 말했다. “높은 데 오르면 푸른 바다가 망망하고 골짜기에 들어가면 물과 돌이 아늑하여 경치가 나라 안에서 처음이니 실로 국중제일國中第一이다.”(14쪽) 백두대간 허리의 오대산 자락을 가르는 대관령이 기준으로 영동은 동쪽 해안선을, 영서는 서쪽 내륙 땅이다. 강원을 그린 이들과 다녀온 이들로는 원주 출신 여자 문인 김금원(金錦園, 1817-1853)의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 복헌復軒 김응환(金應煥, 1742-1789), 진재眞齋 김윤겸(金允謙, 1711-1775),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 1743-1831), 난설헌蘭雪軒 허초희(許楚姬, 1562-1590)외 19인.
1장―“관동팔경을 보지 않으면 천지의 완벽한 공적을 볼 수 없으리”. 1744년 연객 허필의 《관동팔경 8폭 병풍》은 관동팔경 그림의 기원. 통천通川 총석정叢石亭: 지금까지 36점의 그림이 조사, 정선이 일곱 점ㆍ김홍도가 네 점. 고성高城 삼일포三一浦: 1711년의 겸재 정선이 그린 《신묘년풍악도첩》 중 〈삼일포〉는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로 그림지도. 간성杆城 청간정淸澗亭: 옛 그림은 12점이 전해오며 1788년 강세황의 《풍악장유첩楓嶽壯遊帖》의 〈청간정〉이 가장 뛰어난.
양양襄陽 낙산사落山寺: 관동팔경 여덟 곳 가운데 유일한 사찰. 정선이 그린 〈낙산사〉 두 점이 전해오는.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 어린 날 허난설헌이 그렸다는 〈새 구경〉. 복헌 김응환의 《해악전도첩》 중 〈경포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선으로 그린,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 삼척 三陟 죽서루竹西樓: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의 「죽서루기」. 겸재 정선이 1738년에 그린 《관동명승첩》 중 〈죽서루〉는 가장 단아하고 강건하여 장엄하게 그린 최초의 걸작.
울진蔚珍 망양정望洋亭: 조선 숙종은 팔경 중 망양정을 으뜸으로 꼽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고 손수 쓴 현판을 하사. 지금까지 전해오는 겸재 정선의 〈망양정〉 그림 두점. 1738년에 그린 《관동명승첩》과 고려대박물관 소장본. 평해平海 월송정越松亭: 조선 성종이 꼽은 조선 제일의 승경지. 겸재 정선의 〈월송정〉은 달빛 출렁이는 시정詩情에 충실, 김홍도의 〈월송정〉은 해적을 방어하는 수군의 요새라는 사실을 강조.
2장― “이곳도 정경, 저곳도 승경이라”. 나의 리뷰는 단원 김홍도가 1788년에 그린 《해산도첩》의 그림을 소개. 설악산: 〈토왕폭土王瀑〉, 〈계조암繼祖庵〉, 〈와선대臥仙臺〉.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사고 史庫〉, 〈상원上院〉, 〈오대산五臺山 중대中臺〉. 영동: 〈대관령大關嶺〉, 〈호해정湖海亭〉, 〈구산서원丘山書院〉, 〈가학정駕鶴亭〉, 〈무릉계武陵溪〉, 〈능파대凌波臺〉, 〈성류굴聖留窟〉. 영서: 〈청심대淸心臺〉.
곡운구곡谷雲九曲은 강원 화천에 감춰진 은일지사의 영토로 화천과 춘천의 경계 지촌천에 자리 잡았다. 1670년 곡운 김수증은 관직을 버리고 춘천 북쪽 백운산 일대 사탄史呑 땅에 들어가 이상세계를 꿈꾸었다. 평양에서 활동하는 화가 조세걸을 불러들여 1682년 《곡운구곡도첩》을 완성했다. 김수증은 굽이굽이 휘도는 풍광을 따라 아홉 지역으로 나누고 이름을 ‘곡운’으로 바꿨다. 1곡 방화계傍花溪, 2곡 청옥협靑玉峽, 3곡 신녀협神女峽, 4곡 백운담白雲潭, 5곡 명옥뢰鳴玉瀨, 6곡 와룡담臥龍潭 7곡 명월계明月溪, 8곡 융의연隆義淵, 9곡 첩석대疊石臺. 또 하나의 6곡 농수정籠水亭은 곡운 김수증의 살림집을 그린 그림.
30년 동안 옛 그림 실경산수화에 파묻혀 살았던 미술사학자가 으뜸으로 치는 화가는 진재眞齋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이었다. “〈월연〉, 〈극락암〉, 〈태종대〉 같은 그림을 보면, 이 분은 욕심이 없어요. 화폭의 50퍼센트를 비워둬요. 먹이나 채색을 연하고 부드럽게 하지만 그렇다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예요. 그 기운이 담겨 있죠. 이분은 천재예요.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