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대빈창 2025. 8. 27. 07:00

 

책이름 :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지은이 : 아리엘 도르프만

옮긴이 : 이종숙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라틴아메리카 칠레는 1930년대 쿠데타가 연이었고 부패와 빈곤으로 신음했다. 평균수명은 남성이 34.4세, 여성이 37,7세였다. 청년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는 고향 발파라이소의 반부렌 병원에서 칠레 노동자의 참혹한 민낯을 만났다. 그가 부검한 1,500여구의 시신은 빈곤에 찌들어있었다. 의사의 삶을 시작한 아옌데는 군대, 감옥, 주검 안치소에서 칠레 민중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엔데는 1937년 사회당 소속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치를 시작했다. 1951년 칠레사회당 소속으로 ‘인민전선’의 대선후보였으나 고작 5.6%의 지지를 얻었다. 칠레는 단 2,000명이 전국 자본의 87%를 소유할 정도로 부의 편중이 극심했다. 1958년 ‘인민행동전선’의 대선후보로 나왔다가 3% 차이로 낙선했다. 1960년대 미국 제국주의는 노골적인 테러 국가였다. 1964년 브라질 군부쿠데타를 조종했고, 미군은 1965년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를 침공했다. 명분 없는 베트남전쟁에 뛰어들었다.

1964년 대선에서 아옌데는 CIA의 지원을 업은 우파에게 패했다. 1969년 10월 9일 ‘인민연합’을 대표하는 야당 대선후보로 나섰다. 네 번째 도전이었다. 1970년 9월 4일 대선에서 36.6%의 득표율로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100만달러에 달하는 미국 CIA의 공작도 아옌데의 승리를 막지 못했다. 30년에 걸친 선거혁명이 성공했다.

아옌데는 내외부의 적에 맞서 개혁을 단행했다. 칠레 민중의 염원이었던 구리 광산을 국유화했다.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경제는 활성화되었다. 1971년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미국 대통령 닉슨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CIA의 칠레 군부 쿠데타를 사주했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쿠데타 세력은 국영 라디오 방송국과 모네다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아옌데는 AKM소총을 들고 집무실로 향했고 최후의 연설을 했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아옌데는 남은 인원에게 투항을 명령하고 문을 닫아 걸었다.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옌데는 65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칠레인으로 선정된 위인. 세계 최초 국민투표에 의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칠레 제32대 대통령. 아옌데는 군부 쿠데타로 비극적 삶을 마감하면서 폭력적 제국주의 미국의 비정함을 고발한 세계적 민중혁명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시인 진은영의 첫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서 시집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를 만났다.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1942- )은 칠레의 망명작가였다. 시집은 피노체트 군사정권에서 칠레 민중이 겪는 죽음과 침묵의 세계, 행방불명자들에 대한 ‘증언시’였다. 1부 ‘없어지고, 안 보이고, 사라진 사람들’ 21편은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증언, 2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던 시들’ 6편은 행방불명자의 목소리, 3부 ‘역류’ 9편은 해외망명자의 이야기, 에필로그 「문 유감有感」은 독자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옮긴이 영문학자 이종숙(李鍾淑, 1952- )은 해설 「망명과 통역의 시」에서, “삐노체뜨 군사정권 아래 칠레가 겪는 아픔을 세계에 전하고, 죽음과 침묵의 세계로 유배된 ‘행방불명자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줌으로써 그들을 부재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투쟁으로서 쓴 시들이고, 망명지에 있으면서도 조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통로로서 만들어낸 시”(118쪽)라고 말했다. 표지그림은 이르마 무에르(Irma Muller)의 1976년작, 아르삐에라(arpillera, 라틴아메리카 민속예술의 하나로 헝겊에 조각천을 붙이고 수를 놓아 만든 자수 그림)로 싼띠아고 도심에서의 아들과 며느리의 체포 장면을 묘사했다. 마지막은 「일장석日長石」(72쪽)의 전문이다.

 

그들은 죄수를 / 벽에 바싹 붙여 세운다. / 군인 한 명이 그의 두 손을 묶는다. / 군인의 손가락이 그에게 와닿는다―강하고 / 부드러운 손가락이, 작별을 고하면서, / ―나를 용서하오, 동지여― / 목소리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 그 목소리와 / 팔에 와닿은 손가락의 반향이 / 그의 몸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 단언컨대 그의 몸은 빛으로 가득 차고 / 그에게는 총소리가 / 거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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