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귀가 서럽다

대빈창 2025. 9. 11. 07:00

 

책이름 : 귀가 서럽다

지은이 : 이대흠

펴낸곳 : 창비

 

칠팔년전이었다.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는 구절을 만나고,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온라인 서적을 검색했다. 시집은 품절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시인의 신간 시집 『나는 북에서 온 사람』(창비, 2018)과 십년이나 묵은 산문집 『이름만 이삐먼 머한다요』(문학동네, 2007)를 손에 넣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난해 연말 온라인 서적에서 살아난 시집을 만났다. 반가웠다. 『귀가 서럽다』(창비, 2010)는 시인 이대흠(李戴欠, 1967- )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76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염경희는 해설 「천 개의 검은 귀」에서 “그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된 다양한 제재들은 여전히 현실인식이 동반된 리얼리즘적 시각에 의해 용해”(130쪽)된다고 말했다. 표사는 시인 고은과 김경주의 몫이었다.

시집과 인연을 맺어 준 고은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의 청천강 저쪽에 백석의 절제가 새겨지고 이로부터 남에 대흠 그대의 진솔이 들끓는다.” 시인은 남도의 자연스런 사투리와 정감어린 언어로 고향 풍경을 그렸다.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희망과 따듯함을 발견했다.

 

마른 더덕같은 늙은 여자 / 명절 때마다 봉다리 챙기는 어머니 / 돈벌러 싱가포르 간 큰형 / 공장생활하는 햇어미 / 부자 동낭치 / 꽉 막힌 면서기 아우 / 한쪽 눈이 먼 숙모 / 토방에 몰래 보리쌀 놓고 간 물마장골 아짐 / 마흔에 혼자 된 하고댁 / 턱수염 시커먼 사내 이숙 / 걸쭉한 욕쟁이 영춘이성 / 예순 넘어 한글 배운 수문댁 / 땅을 달래면서 말뚝을 박는다는 황영감 / 버스기사한데 돌아가자고 떼쓰는 노인네 / 마흔 갓 넘어 교통사고로 죽은 벗

 

어머니와 고향에 얽힌 기억을 풀어낸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2부의 시들은 온전히 어머니께 바치는 송가頌歌였다. 마지막은 두 번째 詩 「고매古梅에 취하다」(11쪽)의 전문이다.

 

밭뙈기 팔아 들여온 쌀가마에서 / 고방 항아리로 쌀알들 쏟아지는 소리 / 햇살이 몽글다 / 어깨가 좁았던 사람 / 착해서 가난해진 그 사람의 몸에서 나던 살냄새 / 바람이 여물 먹은 소처럼 순해진다 / 몸이 검다는 것은 울음이 많이 쌓였다는 것 / 청산초 잎이 어린 쥐의 귀처럼 / 쫑긋하다 / 탈출구 없는 향기의 감옥 / 멀리 왔다 했으나 / 여전히 묶였다 / 온갖 소리 다 스민 / 저 아래에서 / 도대체 뿌리는 / 얼마나 많은 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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