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육사 시집

대빈창 2025. 9. 12. 07:00

 

책이름 : 육사 시집

지은이 : 이육사

펴낸곳 : 열린책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 한 발 제겨디딜 곳조차 없다 //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극한 상황에 처하여 양보 없는 비극적 삶을 살다간 시인의 서리처럼 차고 강철처럼 단단한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절정」(11쪽)의 전문이다. 시인 박태일(1954- )의 시집 『옥비의 달』에서 이육사를 만났다. 시집을 덮고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양하는 친일적 삶을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허구적 논리로 포장하고, 해방 후에는 독재자의 자서전을 쓰고, 광주를 피로 물들인 군부 독재자에게 찬양시를 받쳤던 '단군이래 최대의 시인‘(?)의 시선집이 눈에 뜨였다.

자신에게 부아가 들끓었다. 온라인 서적을 검색했다. 『육사 시집』은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출간 100주년을 맞아 스무 권을 가려 뽑은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으로 출간되었다. 텍스트는 1946년 10월 20일 서울출판사에서 발행한 초간본이었다. 이육사하면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 「절정」, 「광야」 세 편의 詩가 떠올랐다.

서른일곱에 고명딸을 얻는 시인은 100일에 직접 이름을 지었다. 기름질 옥沃 아닐 비非. ‘옥비’는 욕심 없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간디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 담겼다.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1904-1944)은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었다. 안동 도산 원촌마을 여섯 형제(원기, 원록, 원일, 원조, 원장, 원홍)의 둘째였다. 원기, 원일, 원조도 항일투쟁사에 이름을 남겼다. 육사는 1930년 일제 탄압에 항거하는 ‘대구격문사건’의 배후자로 검거되어 수개월간 무자비한 고문에 시달렸다. 대나무로 다리 살점을 떼내는 고문으로 부인이 넣어준 하얀 솜바지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 계속 갈아 넣어야했다.

석방되자 육사는 만주로 떠났다. 1932년 10월 의열단이 중국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6개월의 훈련과정을 마쳤다. 육사는 만주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43년 육사는 국내 무력투쟁을 지원하려 국내 무기반입을 시도했다. 7월 모친과 맏형 소상小祥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육사는 차디찬 북경 일제감옥에서 4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육사의 시신은 고문 흔적으로 온 몸이 얼룩져 있었다. 마지막은 ‘막막한 광야를 헤매며 민족의 신화를 되찾고자하는 민족지사의 비장한 희망가’ 「광야」(36-37쪽)의 전문이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들이 /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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