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대빈창 2025. 9. 22. 07:00

 

책이름 : 지하로부터의 수기

지은이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옮긴이 : 김연경

펴낸곳 : 민음사

 

10여년 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155·156 세 권으로 출간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잡았다. 나에게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두 번째 소설이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로 출간된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경장편 분량이었다. 옮긴이 김연경은 말했다. "고심 끝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주인공 ‘지하 인간’은 건강하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생활’이라는 것이 결여되었고, 그의 ‘수기’는 그저 ‘실존’ 그리고 ‘지하’에서 흘러나온 고백"인 것이다. 표지그림은 이반 크람스코이의 〈자화상〉(1867)이었다.

소설은 1부 「지하」, 2부 「진눈깨비에 관하여」로 구성되었다. 1부의 첫 문장은 ‘나는 아픈 인간이었다…….’이다. 이름없는 화자話者인 나는 고아 출신이다. 8등관 관직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먼 친척이 6000루블을 유산으로 남겨주어 당장 사표를 내고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그는 마흔살 가량의 사내로 이십년 동안 세상을 향하여 독기를 품은 채 살아왔다. 그는 피해망상에 젖어 사람들의 작은 말과 행동에도 심한 모욕감을 느껴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지하에 틀어박힌 채 끝없이 떠벌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2부는 화자가 20대에 경험했던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신사들이 당구대 옆에서 싸움을 하다가, 한 명이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보았다. 당구장으로 들어간 그 때문에 길이 막힌 한 장교가, 그의 어깨를 거머쥐고 물건처럼 옮겨놓은 뒤 지나갔다. 그는 치욕감에 장교에게 복수할 궁리를 한다. 장교를 비방하는 소설을 쓰고, 결투를 신청하는 편지를 쓰지만 소설은 활자화되지 못했고 편지는 부치지도 않았다. 고작 네프스키 거리에서 살짝 어깨를 부딪힌 것으로 크게 만족했다.

동창생 시모노프를 마지막으로 본지 일 년만에 찾아갔다. 동창생들이 장교로 복무하는 무슈 즈베르코프가 다른 현으로 떠나게되서 송별회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는 부득부득 송별회에 참석하겠다고 우겼다. 약속장소 파리호텔에 5시에 나갔지만 송별회는 6시로 늦추어져 있었다. 그는 취기가 올랐고 짜증만 커져갔다. 시모노프한테 돈까지 빌려 유곽으로 2차를 떠난 일행을 부득불 쫓아갔다가 매춘부 스무살 리자를 만났다. 그는 감정에 젖어 리자에게 될말 안될말을 퍼붓고 주소 적힌 쪽지를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후 하인에게 히스테리를 부릴 때 리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가난에 수치심을 느껴, 그녀를 모욕했고 짓뭉개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의혹과 공포에 휩싸였지만 이내 환희에 차 그를 껴안았다. 그가 손에 5루블을 쥐어 주었으나, 그녀는 돈을 책상위에 던져놓고 갔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와 그의 형이 발행하는, 보수를 표방하는 잡지 『세기』에 1864년 발표되었다. 작가가 수용소와 사병으로 강등되어 복무한 팔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발표한 소설이었다. 옮긴이는 말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가적 직관과 본능으로 소설문법과 세계 인식의 틀을 배반하면서 소설장르의 극단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이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 장편보다 훨씬 더 난해하고 모던한 것, 나아가 가장 문제적인 것도 이 때문”(23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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