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구룡포로 간다

대빈창 2025. 11. 5. 07:30

 

책이름 : 구룡포로 간다

지은이 : 권선희

펴낸곳 : 애지

 

시인은 고교시절, 학교 대표로 율곡백일장에 참가하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아무 생각없이 접수한 시 부문에서 입선했다. 전·후기 대학입시에서 낙방하고, 아버지의 재수불가에 할수없이 서울예전에 입학했다. 포스코에서 주최하는 샘물백일장에 아들을 데리고 온 그는, 남편의 권유로 백일장에 참가했다가 시 부문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포항문학』을 발간하는 동인 〈푸른시〉의 권유로 1988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군립도서관의 시집을 검색하다,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창비, 2024)의 표제가 눈에 띄었다. 바다를 노래한 시집이겠지하는 생각으로 대여했다. 그렇게 시인 권선희(權善熙, 1965- )를 만났다. 나는 뒤늦게 시인의 근작, 세 번째 시집을 잡고 매혹되었다. 다행스럽게 첫 시집 『구룡포로 간다』(애지, 2007)가 군립도서관에 비치되었다. 두 번째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를 온라인서적 가트에 넣었다. ‘애지 시선’은 진즉에 낯이 익었다. 몇 권의 시집이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고 있었다. 시집을 기획한 유용주·박수연·한창훈·이정록의 몇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오징어 집어등, 과메기 덕장 경비견, 바닷속을 뒤집는 태풍, 바닷가 한의원 중매서는 할매, 비린내 밴 작업복, 구룡포 동화루 짜장면, 암컷 대게 빵게, 어판장 고래 한 마리, 막내 실종신고 하러가는 꼬뿌랑 할매, 선구점 점원 김군, 다무포 해녀 팔복이 각시, 물미역 노점상 아낙네, 고랫배 탔던 늙은 어부, 폐차버스 노인휴게실, 어촌교회 주일예배, 알배기 러시아산 동태찌게……

 

시집은 구룡포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존재들 각각의 이름과 그들의 힘겨운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담아냈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은 해설 「바다로 흘러가는 삶의 시간들」에서, “(시인의) 구룡포는 바다를 이웃하고 살아가는 생의 시간들이 머무는 곳,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노동과 일상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했다. 마지막은 「쥐며느리를 닮았다」(38쪽)의 전문이다.

 

무화과 익어가는 정오를 지나는 / 꼬부랑 할매 / 하산외과 담에 낮게 붙어 / 행방불명 신고하러 간다 // 공익을 위해 근무하는 찬호와 동호는 / 분식집 국수 앞에 앉았는데 / 시퍼렇게 대들던 아들은 / 동네 골목도 밝히지 못하는 집어등 타고 떠나 /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 말소를 경고하며 날아 든 통지서 / 꼭 쥐고 부지런히 걸어도 / 라일락꽃 향내만 어지럽지 멀기만 한 읍사무소 / 생떼 같은 막둥이 돌아 올 길 지우러 가는 / 둥그런 등허리에는 / 햇살까지 무겁게 올라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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