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지은이 : 성석제
펴낸곳 : 강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개정판/강, 2003), 『조동관 약전略傳』(강, 2003), 『홀림』(문학과지성사, 1999),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작과비평사, 2002),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문학동네, 2003), 『재미나는 인생』(강, 1997)
2000년대 초반 어느해, 나는 작가 성석제(成碩濟, 1960- )의 소설집 4권, 장편掌篇 소설 2권을 한꺼번에 구입했다. 20여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작가는 1986년 『문학사상』에 시 「유리 닦는 사람」으로 등단했다. 1994년 단편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발표하며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새가 되었네』(강, 1996)의 개정판이었다. 소설가에게 ‘탁월한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의 장인’, ‘입담과 재담의 진면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배기량 육천씨씨, 사륜구동 지프가 다리 난간을 들이박고 허공에 떠올랐다. 바퀴가 공중에 들린 0.5초가 지난 후 사내는 정신을 차렸고, 옆자리의 여자는 기절해있었다. 그는 ‘ㄷ’시의 조폭 행동대장이었다. 아버지는 동네가 알아주는 술주정뱅이로 술만 취하면 아내를 때리는 주폭이었다. 그의 영웅은 시골읍내의 깡패 싸움귀신 마사오였다. 그가 열다섯살 때 마사오는 포승에 묶여 고향을 떠났다. 마사오가 갇혀있는 교도소가 있는 ‘ㄷ’시로 두 명의 아이와 함께 떠났다. 사내가 공중에 뜬 채 죽기까지 4.5초가 걸리는 동안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것이 내용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말이든 해보려고 한다. “엄마, 무서워”
「금과 은의 왈츠」는 태풍이 아래지방을 통과해 지나간 밤, 잘 생긴 사내는 새벽 산으로 갔다. 아파트와 도로를 사이에 둔 산이었다. 잠을 설치던 그는 산에서 들려오는 ‘야호’ 소리를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돌거북이 물을 내뿜는 산아래·중턱·새약수터를 들러 산꼭대기로 향했다. 군대시절 케이비에스 제일에프엠의 육이오특집 프로그램 진행자는 피난지 부산 판잣집에서 되풀이해 듣던 〈금과 은의 왈츠〉를 유성기 음반으로 틀어주었다. 아파트에서 들렸던 ‘야호’ 소리는 산정상이 아니라 밑에서 화답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첫사랑」은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온 아이들이 마흔명쯤 되는 지옥구 지옥동 지옥중학교 3학년26반이었다. 나의 키보다 한뼘쯤 더 크고 얼굴은 네모지고 검었던 백승호를 만났다. 그는 학교봄철 신체검사에서 어른 냄새가 나는 털을 과시했고 아이들은 존경했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 아이들의 괴롭힘에서 구해주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이른 봄」은 꿩의 의인화소설이었다. 나 장끼는 한갓지고 헐벗은 야산의 숲, 인가에서 떨어진 메밀밭을 품고 있는 계곡에서 살았다. 일곱 해하고도 반, 여덟 번의 겨울을 무사히 났다.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색깔도 없는 농약 다이메크론에 나의 가족 친척들은 몰살당했다. 사육장 출신의 까투리를 만나 먹이 있는 곳을 일러주고 나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냥꾼과 개가 다가왔다. 나는 까투리를 살리기 위해 그들의 총구를 유인했다. 죽어가면서 까투리가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가 되었네」는 작은 컴퓨터 부품회사를 운영하던 나는 부도를 맞았다. 이십년전 처남에게 사주었던 열세평짜리 오층 아파트는 재개발되면서 금값이 되었다. 처남네 가족은 아파트의 철거로 지하방으로 이사했다. 처남한테 한몫 바란다고 오해한 아내와 싸우다 이혼하기로 했다. 빚쟁이에 몰린 나는 처남의 빈 아파트에 들어갔다. 서른일곱 해를 산 나는 철거된 아파트 베란다에서 새처럼 날아올랐다. ‘부도를 내고 떴다’는 말을 업계에서는 ‘새가 됐다’고 한다.
「황금의 나날」은 읍내에서 가장 부자인 시계방 주인 곱추와 읍내에서 가장 곱고 착하고 눈물많은 아주머니. 나는 서른살이 되면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꿈을 꾼다. 아주머니의 엄마는 기생이었고, 열여덟 살에 곱추에게 시집왔다. 아들 이자영은 희고 작고 여렸다. 나는 야구부 사번타자, 포수, 주장이었다. 이자영에게 야구를 가르쳐주고 흰빵을 얻어먹고 아주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었다. 생각하면 그 시절은 머리위로 황금가루가 내려앉는 나날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천사같은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스승들」은 첫 번째 스승은 초등학교 삼학년 담임으로 선생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는 나를 게시판 문예란에 게재할 작품을 선정하는 일을 맡겼다. 그는 동화작가 문청이었다. 두 번째 선생은 중학교 일학년 국어선생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이었다. 나는 똑같이 생긴 공책을 하나는 국어노트, 하나는 일기·잡기장으로 사용했다. 불시에 국어 공책을 제출하라는 지시에 잡기장을 냈다. 나의 공책을 읽은 선생의 표정은 짜증과 경멸이 뒤섞였다. 세 번째 선생은 미션스쿨 고등학교의 국어선생으로 고문古文과 작문이 주전공이었다. 국어과목 최고득점자로 특별활동 문예반에 들어갔다. 개교90주년 기념 교지 특대호에 편집을 맡았다. 빈 두면을 채울 급조한 억지 시를 제출했다. 시화전에 걸린 시는 누나가 〈독서신문〉에서 발췌한 표절시였다. 연애, 군대, 알콜, 노래, 돌연하고 어린 벗들의 죽음. 교내문학상 시부분에 응모 입선한 작품은 최초의 문학작품이었다. 어느 11월 학교 올라가는 길에 문학이 찾아왔다. 지하다방으로 들어가 공책에 ‘문학’을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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