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작별하지 않는다

대빈창 2025. 11. 18. 07:30

 

책이름 : 작별하지 않는다

지은이 : 한강

펴낸곳 : 문학동네

 

주인공 경하는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 위로 흩어지는 눈발, 밀물에 잠겨들던 수많은 무덤들’이 나타나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5월 광주’를 다룬 소설을 출간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경하는 인선에게 꿈 이야기를 했고, 둘은 그 꿈을 영상에 담는 작업을 계획했다. 경하가 대학 졸업하고 잡지사 편집기자 시절, 프리랜서 사진가 인선을 만났다. 십년동안 매달 출장을 같이 다녔고, 퇴사 후에도 이십년을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인선의 메시지가 날아온 것은 병원이었다. 그는 고향 제주 중산간 마을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목공작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기톱에 검지와 중지 첫 마디가 잘려 봉합수술을 받은 후였다. 봉합된 두 손가락의 신경을 살리려면 3분마다 3주 동안 바늘로 상처를 찔러 피를 내야했다. 글귀를 읽어나가는 내가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고 소름이 돋았다. 인선은 경하에게 제주도 집의 앵무새 아마를 부탁했다. 경하는 마지막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고, 폭설 속에서 운 좋게 마지막 지선버스를 탔다. 어두워오면서 눈이 쌓인 건천에 미끄러져 얼굴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천신만고 끝에 인선의 목공방 불빛이 눈에 띄었다.

앵무새 아미는 죽었고, 아마가 살았으나 경하가 도착했을 때 아마도 죽어있었다. 쌓인 눈을 헤치고 언 겉흙을 파고 아마를 안채 종려나무 밑에 묻었다. 2부 ‘밤’의 1장 소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바다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절벽처럼 일어선 파도가 해안을 덮치는 대신 힘차게 뒤로 밀려 나갔다. 수평선을 향해 현무암 사막이 펼쳐졌다.’(175쪽) 로 시작되었다. 표지그림이었다. 앵무새 아마와 인선의 혼이 나타나 경하와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여기서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동갑내기로 계엄군에게 학살당한 정대의 혼이 화자話者로 등장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끔찍한 민간인 학살.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벌어진 초토화 작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무차별 학살극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그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바다로 도망치는 제주민중을 감시하는 미군함정이 제주도를 에워쌌다. 피의 참극으로 희생된 3만 명. 당시 제주도 도민은 약 27만 명으로 1/9이었다. 오랜 세월 제주 4・3은 금기禁忌였다.

인선의 입을 통한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姜正心이 겪은 제주4·3의 아픔이 독자의 내면에 고통스럽게 전해졌다. 인선의 아버지는 군경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손을 떨었다. 15년을 극악무도한 시절의 형무소에서 보냈다. 뜨겁게 데운 돌을 가슴에 올려놓아야 겨우 버티는 협심증으로 고생하다 끝내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인선의 어머니가 정신이 흐려지면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어린 자매가 운좋게 바닷가 당숙네 심부름 갔다가 살아남았고, 중산간 마을의 가족이 몰살당한 정황이었다. 어린 두 자매는 얼굴에 내린 눈이 얼어붙은 가족을 찾으려고 하루종일 학살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의 오빠는 경산 코발트 광산 갱도에서 학살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되어 총살되었고 암매장된 사람들의 숫자가 이십만에서 삼십만으로 추정되었다. 인선의 어머니는 일흔이 넘어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었던 시기, 제주 유족회의 경산 광산 방문을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누구보다 강인했던 유가족이었다. 1948년 제주 겨울, 미군정의 명령과 이북 출신극우 청년단원의 잔인한 학살, 해안 봉쇄, 언론 통제로 그들은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열 살 미만의 아이들 천오백명이 죽었다.

‘제주공항, 하고 대답하면서 인선이 목소리를 낮췼다. …… 활주로 아래에서’(209쪽) 전쟁발발 직후 제주에서 예비검속되어 총살된 천 여명의 사람들이 공항 활주로 아래 묻혀있었다. 전체 골격이 작은 유골의 발에 작은 고무신이 신겨진 채 웅크리고 모로 누운 유골이 눈에 띄었다. 인선이 경하의 악몽을 프로젝트화하는 나무작업의 제목을 〈작별하지 않는다〉로 붙였다. 나는 인선의 어머니가 겪은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한국의 소설가 한강(韓江, 1970 - )이었다. 군립도서관 작가의 책들이 부리나케 대여되었다. 나는 그동안 작가의 시집 『서랍을 저녁에 넣어 두었다』를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다. ‘5월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와 ‘흰 것’을 통해 연상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린 새로운 형식의 ‘시 소설’ 『흰』을 연이어 잡았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가장 먼저 손에 펼쳤다. 제주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대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수상작가의 작품을 통해서나마 ‘5월 광주’와 ‘제주4·3’을 올바르게 인식하였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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