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정신머리

대빈창 2025. 11. 27. 07:30

 

책이름 : 정신머리

지은이 : 박참새

펴낸곳 : 민음사

 

‘2023년 8월 / 오후 6시 29분 / 집 없는 참새 / 드림’ 「시인의 말이라는 말은 참 웃긴 말이다」(177-180쪽)의 마지막 연이다. 각주는 다자이 오사무가 제2회 아쿠타가와상에 응모하면서 심사위원 사토 하루오에게 자신의 가난을 얘기하며 수상을 부탁한 서신의 서명으로 ‘집 없는 참새’였다. 나는 시인이 필명을 여기서 따 온 줄 알았다.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참새(1995- )는 잡지사의 에디터로 일할 때 쓴 필명으로 독자들과 접점이 커지면서 의미가 더해졌다고 한다. 시인의 첫 시집을 펼쳐 든 나는 솔직히 ‘정신머리’가 없었다. 7부에 나뉘어 실린 55편의 시들은 실험적·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연속이었다. 문학평론가 최가은은 해설 「나에게 ‘진실’인 것을 내가 말하기」에서 “시인이 가진 모든 것을 개시하고, 까발리고, 내던지고, 교묘하게 숨기는 듯 하다가도 다시금 모조리 발산하는 시집”(215쪽)이라고 말했다.

시집을 여는 0부의 3편은 긴 산문시였다. 시편들의 문장은 저주와 비속어가 난무했다. 이메일 메신저, 일기, 진료 차트, 시나리오 등 여러 형식이 등장했다. 가운뎃줄로 시구절을 지웠고, 육필원고, 그리고 흐릿한 활자체로 눈이 시렸다. 「Defense」(39-42쪽)의 첫 시는 영문이었고, 두 번째 시는 원문 영어시를 챗GPT-3.5가 번역했고, 세 번째 시는 시인의 한국어 시였다.

「이야기서점이야기」(101-103쪽)는 독서가 알베르트 망구엘의 열여섯 살, 미국 뉴욕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에서 일할 때, 눈이 멀어가던 호루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손님으로 찾아와 망구엘에게 보수를 줄 테니 매일 몇 시간씩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일화가 소재였다. 시편에는 수많은 문인들의 글이 인용되었다. 눈에 뜨이는 대로 거칠게 긁적인 것만 해도,

프란츠 카프카, 장 폴 사르트르, 마크 트웨인,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에밀리 디킨슨, 칼린 지브란, 장 뤽 고다르, 파울 첼란, 레이먼드 카버, 찰스 부코스키, 김종삼, 허연, 황인찬……….

뒤표지를 덮고나자, ‘정신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고른 시는 마음에 와닿아서가 아니었다. 다만 〈ᄋᆞ래 한글〉자판을 두드리기가 용이해서였다. 「국어」(155쪽)의 전문이다.

 

이젠 쓸 게 없다 / 얼마나 살았다고 // 집 앞 마지막 골목에서 / 모르는 그 애가 불러 주던 / 깨끗하고 단단한 노래 내음 // 모국어였던 것 같다 // 다시 //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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