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악기惡記

대빈창 2025. 11. 28. 07:30

 

책이름 : 악기

지은이 : 조연호

펴낸곳 : 난다

 

‘시단의 박상륭’ 시인 조연호(1969- )는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전위시의 최전선’으로 불리는 그는 ‘난해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시인이었다. 군립도서관에 몇 편의 시집의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뇌세포에 균열이 일어나는 짓을 사서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하고 한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재작년 초겨울, 시인의 산문집을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었다. 출판사 《난다》에서 15년 만에 펴낸 개정증보판 『행복한 난청』이었다. 부제가 ‘음악에 관한 산문시’로 시인의 첫 산문집이었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하다,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악기惡記』을 발견했다. 《난다》의 발행인·시인 김민정은 뒤표지 추천사에서 말했다. “시편마다 기억의 균형에 대해, 물질의 기울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사람. 이 무시무시한 악공惡工이 조현호라고”

부제가 ‘시에 관한 아포리즘’이었다. 시에 관한 단상들을, 시인의 특유한 문제로 펼쳐놓은 산문집이었다. 책은 28꼭지로 구성되었다. 실린 글들은 2쪽의 「독서는 죽은 사람이 차지할 만큼의 들판」에서 44쪽의 「악기―시」까지 분량이 다양했다. 시인은 말했다. “시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누구의 것이 되었건 부질없다는 점에서 자명하지만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맴돌지도 않는 법이다.”

 

시는 날지 않을 때의 깃털처럼 가슴에 허공의 부피를 모은다. 시인은 고통을 앓기 때문에 죽음을 누리는 자이다. 시인이 고통스러운 것은 시와 자신이 분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의 목소리가 더 이상 이전처럼 자신에게 무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가 이이기 위해서는 시인이라는 특수한 존재됨과 멀어져야 한다. 언어 예술의 자명성은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표명 능력을 불분명한 등가물로 보여준다는데 있다.

언어를 문자로 시도할 때 이해는 세속적 신뢰에 지나지 않는다. 시 역시 하나의 대화이며, 현존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참된 것이 아직은 아님을 자각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절망스러운 것이다. 독서가 시작되면 하나의 유채색과 다른 유채색 사이의 무채색이 떠오른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줬다는 죄로 벌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해들은 신의 파멸이라는 예언을 신들에게 비밀로 지켰기 때문에 신들로부터 분리되고 항구한 죄를 받은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의 생각이 타인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가에 대한 것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과도 얼마 다른가를 보여는 신화다. 시가 영혼을 요구할 때 악은 욕망의 실현을 방해하는 저 처절들의 서書를 참조하라고 요구한다. 자기 자신과 음악이라는 두 세계로부터 철학자는 멈춰섬으로써 가장 멀리 나아갔고, 시인은 더 나아가고자 함으로써 두 세계 모두를 잃었다. 언어는 의미가 경험과 무관한 순수함으로 의역된 존재다.

시인의 시간은 언제나 자정이다. 시는 죗값을 예술이게 했고 선행의 몫은 묵등墨等이게 했다. 시인은 부정된 자연이다. 문학은 자신의 사후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그걸 맡기는 것이다. 문학은 원칙을 표현할 뿐 원칙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언어적 형태의 참여와 참여적 형태의 언어가 이 논의에서는 혼동될 수 있다. 시는 시인됨이라는 용기를 버리는 장소이고 시인은 시인됨이라는 용기를 버림으로써 시라는 용기를 얻는 장소이다.

문학은 형상이 하지 말았어야 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환원해야 한다. 예술은 우선 현실에서 도약해 온 것이며 예술이기 위한 번역을 거친 뒤의 산물이다. 시인이 노래를 울음으로 만드는 사람, 눈먼 새보다도 더 세상의 가장 약한 피조물이 시인이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의 ‘감정은 형태의 근원’. 존재의 경계가 조밀하다는 점은 우주와 시가 같다. 문학에 대한 믿음이 문학적이어서는 안된다.

 

쉽지 않은 책읽기였다. 글들은 일관된 형식도 계산된 짜임새도 없었다. 짙은 철학적·관념적 색채의 문체, 고답적이고 유려한 스타일, 듣도보도 못한 한자의 조어, 만연체 문장 등. 시인은 “시나 문학의 세계에는 선함도 악함도 없다. 선함을 입히려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의미로, 그들의 도덕 기준에 어긋났다는 의미로, 악惡을 제목에 사용”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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