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대빈창 2025. 12. 5. 07:30

 

책이름 :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지은이 : 박성우

펴낸곳 : 창비

 

『거미』(창비, 2002) / 『가뜬한 잠』(창비, 2007) /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 『웃는 연습』(창비, 2017) /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창비, 2024)

 

시인 박성우(朴城佑, 1971- )는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펴낸 시집은 모두 다섯 권이었다. 한권의 시집도 빠짐없이 책장에서 어깨를 겯고 있는 여덟 명의 시인 중 한 명이었다. 시인은 그동안 세심한 감수성으로 향토성과 서정성이 넘쳐나는 공동체적 양식을 살펴왔다.

오랜만에 시인을 다시 만났다. 7년 만에 펴내는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담았다고. 뒤표지 추천사에서 영화감독 이창동은 “시는 쓰거나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고 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1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해설 「되찾아야 할 마음의 기술들」에서 “과학기술과 첨단 시스템에 삶을 맡기고 표준화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좇느라 잃어버린 이 땅의 오래된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질그릇 조각」(100-102쪽)은 시인이 경북 예천으로 안도현 시인을 찾아갔다. 4대강사업으로 내성천의 모래밭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인은 강물에 닳고 닳아 맨들맨들한 질그릇 조각을 주었다. 책갈피나 문진으로 쓰기에 알맞았다. 질그릇 조각을 보며 시인은 맑디맑은 내성천에서 뛰어노는 까까머리 소년 안도현을 떠올렸다.

시편들은 도시살이와 시골살이를 오가면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내가 시인을 찾는 것은 친구 시인 함민복만큼이나 선한 마음이 드러나는 시편들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책장에 더 이상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피 얇은 시집이니만치 온라인서적을 통해 구입했다. 백석의 향토성과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이라는 말에 걸맞은 시편 『입동』(105쪽)의 전문이 마지막이다.

 

상강에 날아왔던 물오리들이 물결을 당겨 펴며 물그물을 쳤다 // 텃밭에서 몸집을 키우던 배추 두포기가 뿌랭이만 남기고 갔다 // 포플러 가지 끝에 올라 흔들흔들 울던 까치가 겅중겅중 뛰었다 // 고춧대 뽑아낸 자리로 들어가 기지개를 켜는 겨울초가 푸르렀다 // 무시래기 삶는다던 팽나무집 할머니가 마당가 화덕에 불을 넣고 // 물오리같이, 배추 뿌랭이같이, 까치 꽁지깃같이, 겨울초같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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