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숲에 들다
지은이 : 박두규
펴낸곳 : 애지
오래전에 농업·농촌·농민시집을 찾았다. 몇 권의 시집을 손에 넣었으나, 『당몰샘』(실천문학사, 2001)을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중고 온라인 서적까지 물색했으나 인연이 없었다. 전국 최장수 마을 전남 구례 상사마을의 샘은 ‘지리산 약초뿌리 녹은 물이 다 흘러든다’고 물맛 좋기로 이름났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 배시간에 여유가 있어 〈길상작은도서관〉에 들렀다. 대여도서 목록에 올려있던 시집을 뒤로 물렸다. 『숲에 들다』(애지, 2008)는 박두규(朴斗圭, 1956- )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59편이 실렸다.
시인 박남준은 발문「쓸쓸하고 고요한 어둠의 미학」에서 “안도 밖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것들의 슬픔, 시인들의 태생도 천상 어쩔 수 없이 그와 같은 존재, 경계의 그늘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114쪽)이라고 말했다. 박두규 시인은 1985년 『南民詩』 창립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박남준 시인에 의하면 동인지 결성 장소는 전주 민중서관 뒷골목 대폿집이었다. 동인은 이병천, 정인섭, 최동현, 백학기, 박배엽, 박두규, 박남준 등이었다.
동인 박배엽은 시집 한 권도 없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초파일」, 「계수나무 그녀」, 「獨行」, 「임종」은 먼저 떠난 동인을 기린 시였다. 시인은 산길을 걷다가 쑥부쟁이·구절초 꽃을 만나면 생명사상 장일순 선생을 떠올렸다「無爲堂」(33쪽). 「그대」(34-35쪽)는 전교조·민민전·생명평화결사 운동에 삶을 불태웠던 故 김현준 선생을 기렸다. 「東梅」(18쪽)에서 지리산 악양 동매마을에 사는 시인 박남준을 떠올렸다. 「2월, 남녘교회」(102-103쪽)의 다산초당가는 길의 남녘교회에서 이 땅의 진정한 민중목회자 임의진 목사를 생각했다. 「시인의 전화」(70-71쪽)는 「취업공고판 앞에서」의 노동자 시인 故 박영근 시인을 회상했다.
「묵자墨子, 생각」(88쪽)은 7·80년대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직도 신념을 간직하고 있는지. 「겸재謙齋의 박연폭」(66-67쪽)은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박연폭포〉(종이에 수묵, 119x52㎝)를 소재로 삼았다.
시인은 가시밭길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1989년 〈전교조〉 창립이래 교육현장에서 조직 실무를 이끌었다. 2005년부터 〈생명평화결사〉 운동에 구슬땀을 흘렸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지리산 사람들〉의 대표를 맡았다. 〈여순사건 순천시민연대〉, 〈광주전남작가회의〉……. 시인은 말했다. “저는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시는 깊은 성찰의 산물이다. 따라서 시는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간에 삶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은 「문풍지」(22쪽)의 전문이다.
폭풍한설에 풍경소리마저 얼어붙은 겨울 산사에서 / 온밤을 통째로 우는 건 문풍지뿐이다 / 문의 틈새를 살고 있으나 / 사실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 솜이불이 깔린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누이고 / 바람 타는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 하지만 바람이 멈추고 울음을 그쳐도 / 문풍지는 문풍지, /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 차라리 바람에 온몸을 치떠는 것이, /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 살아있는 이승의 시간인 것을 / 안이어서도 안 되고 밖이어서도 안 되는 / 안과 밖의 경계를 살아야 하는 문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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