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남북주민보고서

대빈창 2025. 12. 17. 07:30

 

책이름 : 남북주민보고서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도서출판b

 

나는 하종오(河鍾五, 1954- )시인께 작은 빚을 졌다. 2021년 연말, 지역신문사에 들렸다가 1인 시위를 마치고 신문사에 오신 시인을 만났다. 출판에 문외한인 나는 시인께 물었다. “〈도서출판 b〉에서 시집을 출간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시인의 답은 당연했다. “계약을 맺었다”고. 신문사를 나오며 작은 약속을 했다. 시인 부부께서 황해의 작은 외딴섬 주문도와 볼음도를 방문하시면 안내해 드리겠다고. 어머니의 희귀질환 증세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다작을 꼽으라면 시인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도서출판 b〉의 ‘b판시선’ 시리즈 1호는 시인의 『남북주민보고서』로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상상력으로 그렸다. 시리즈 2호 『세계의 시간』은 한반도 분단문제를 바라보는 외국인 노동자의 시각을 상상력으로 담아냈다.

시인은 말했다. “남북 주민들이 서로의 사람살이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알 수 있어야 통일이 가능하다.” ‘최후의 리얼리즘 시인’은 『남북주민보고서』(2013)를 자신의 최후 걸작이라고 불렀다. ‘탈분단 3부작’의 마지막 시집이었다. 『남북상징어사전』(실천문학사, 2011), 『신북한학』(책만드는집, 2012). 시집은 부 구분없이 57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노지영은 해설 「탈분단 연작시집 3부작, ‘너나들이’의 이야기시」에서 말했다. “세계 자본의 체제와 그 모순이 분단이라는 신경증을 통해 노골적이고도 완강하게 뿌리내린 대표 공간이 한반도라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 문제는 실재적 현실을 총제적으로 직시하는 언어를 통해 궁구되어야 하는 것”(129쪽)이라고.

후반부 세 편의 시는 월북문인에 대한 상상력을 펼쳤다. 「장삼이사」(90-91쪽)는 「네 거리의 순이」의 시인 임화(林和, 1908-1953). 「뜬소문」(92-93쪽)은 「밤길」의 소설가 이태준(李泰俊, 1904-1978). 「병사 혹은 자연사」(94-95쪽)는 「병든 서울」의 시인 오장환(吳章煥, 1918-1951). 마지막은 (48-49쪽)의 전문이다.

 

의주의 시골 동네에 사는 / 김해성 씨(남, 33세)는 / 봄날 어린 아들과 손잡고 / 산모롱이를 돌아가서 / 해진 겨울옷을 벗고 / 찬 개울물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 앉아 / 소름이 오소소 돋아도 참으며 / 묵은 때를 불렸다 // 봄날 서울의 목욕탕에서는 / 김해성 씨(남, 75세)가 / 열탕에 들어가 눈을 지그시 감고 / 전쟁통에 떠나왔다가 귀향하지 못한 / 의주의 시골 동네에 살았을 적에 / 젊은 아버지와 손잡고 / 산모롱이를 돌아가서 / 해진 겨울옷을 벗고 / 찬 개울물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 앉아 / 소름이 오소소 돋아도 참으며 / 묵은 때를 불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 그날 밤 개운한 몸으로 잠자리에 누웠으나 / 의주의 김해성 씨는 자라는 아들이 걱정되어서 / 서울의 김해성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서 / 단잠을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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