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무빙워크
지은이 : 신수형
펴낸곳 : 아침달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 위로 비가 쏟아진다. 횡단보도 위로 비가 쏟아진다. 뛰어가는 남자의 모자 위로 비가 쏟아진다. 흔들리는 녹색 우산 위로 비가 쏟아진다. 모두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비가 오네. 어떡해. 지나가는 비 아니냐고 누군가 말한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젖지 않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걱정을 한다. 어떡하지. 사람들은 하나둘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비바람이 거세진다.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 위로 계속 은행잎들이 내려앉는다. 젖은 버스와 젖은 택시와 젖은 승용차 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비가 잦아드는 순간을 보려고 나는 계속 창밖을 본다. 무슨 이유인지 음악이 멎어 간다.
「새로 생긴 카페」(42쪽)의 전문이다. 화자는 카페 안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비바람이 거세지고 은행잎들이 수북이 쌓였다. 남자의 모자, 녹색 우산 위로 비가 쏟아졌고 버스·택시·승용차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탈이 나시면 신도시의 대학병원 응급실부터 찾았다.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병원 본관 넓은 로비의 후문 쪽에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아류 제국주의로 성장한 한국의 병원 방문객들은 카페의 커피를 즐겼다. 미국의 커피 프랜차이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커피 카페 기업이었다. 워싱턴주 시애틀에 본사를 두었다. 초록색 로고 안의 인물은 노래로 뱃사람을 홀리는 요정 세이렌(siren)이다. 상표는 미국 문학의 걸작, 허먼 멜빌의 『모비 딕Moby Dick』의 등장인물에서 따왔다.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은 포경선 피쿼드(Pequod)호에서 유일한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제3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착취로 악명 높았다.
올 늦봄에 난생처음 〈스타벅스〉를 찾았다. 고향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부의 봉투를 건넸다. 그는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왔다. 〈스타벅스〉 상품권이었다. 가난한 나라 노동자를 착취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제국주의 커피 프랜차이즈를 나는 멀리했다. 경기 시흥 친구를 만났고, 그도 상품권을 갖고 있었다. 한낮이었지만 매장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우리는 아이스커피를 시켰고, 남은 금액을 기프트카드에 입력시켜 주었다. 친구는 다시 매장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혜의숲》 도서관의 시집코너 앞에 섰다. 낯선 시인의 첫 시집을 빼들었다. 무빙워크(moving walk)는 평평하거나 약간 비탈진 길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사람을 운반하는 길 모양의 기계장치를 가리켰다. 시인 안희연은 추천사에서 ‘완벽한 겨울 시집’이라 말했다. 최소한의 언어만으로 백지를 채워나가는 시가 겨울나무를 닮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시들은 연聯이 짧았다. 시집은 1부 ‘이상한 일들’에 17편, 2부 ‘인생은 어떻게 축구가 되는가’에 18편, 3부 ‘당신의 뒤’에 16편이 실렸다. 부록으로 실린 에세이 「암호」는 시인이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방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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