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재미나는 인생
지은이 : 성석제
펴낸곳 : 강
20여년 전 한꺼번에 손에 넣은 작가 성석제(成碩濟, 1960- )의 소설집 4권, 장편掌篇 소설 2권에서 세 번째로 손에 펼친 책이다. 아니 이제부터 엽편葉篇 소설로 불러야겠다. 나뭇잎사귀에 쓸 수 있다는 짧은 소설. 장편소설이라면 손바닥 장掌과 길長을 쓰는 두 개의 소설 장르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잡은 책은 1997년 초판본(2004년 개정판)으로 길어야 원고지 10매를 넘지 않는 짧은 글(엽편葉篇 소설)들이 실렸다. 「재미나는 인생 1―거짓말에 관하여」에서 「우렁각시에게―序·跋·後記·解題·異論을 대신하여」까지 37편의 글들은 우리 인생의 희비극적 단면을 촌철살인의 언어로 폭로했다. 글의 분량은 「몰두」(1쪽)에서 「나, 혼자서 가본 곳」(7쪽)까지 다양했다.
작가는 1986년 『문학사상』에 「유리 닦는 사람」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1994년 단편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고지 20매 내외의 엽편소설 64편을 모은 책이었다. 짧은 소설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재미나는 인생』(강, 1997),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문학동네, 2003), 『인간적이다』(하늘연못, 2010)을 연이어 펴냈다.
성석제의 소설은 입담이 넘치고 유려하여 가독성이 뛰어났다. 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나는 작가의 무궁무진한 박식함에 끌렸다. 아래는 책장을 넘기다 펜 가는 대로 긁적인 글의 소재였다.
전세계거짓말쟁이협회(WWLC)의 신입회원 축하 연설문, 신병훈련소 방언 쓰는 훈병으로 인한 원산폭격 얼차려, 서툰 솜씨로 팔뚝에 문신을 새긴 목욕탕 거구의 사내, 남자 소변기 위에 붙은 지시문, 분단국가의 깃대봉 높이기 경쟁, 부추국수 레시피, 개에 기생하는 진드기, 아르카디아의 게, 외로운 여권발급 창구의 늙수그레한 공무원, 무표정의 일천점 당구 고수의 엄지발가락 구멍난 양말, 조기축구회 골키퍼 완전주의자, 주메뉴 막국수가 없는 ○○ 가든, 룸살롱 납품 갔다 미국 국적의 재미교포에게 폭행당한 세계화, 즐거움과 환멸을 동시에 경험하는 문학, 아름답다는 자기최면, ‘좇잡고 반성한다’는 군대용어의 유래, 골볼(Goal Ball)에서 외치는 파이팅,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곳 석모도, 훌륭한 비버 사냥꾼이 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에스키모인.
표제는 4편이 실린 「재미나는 인생」 연작에서 따왔다. 부제는 ‘거짓말에 관하여’, ‘뇌물에 관하여’, ‘폭력에 관하여’, ‘운동에 관하여’였다. 엽편葉篇 소설은 짧은 분량으로 구분된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 질 드뢰즈(Gilles Deleuze, 1925-1995)&피에르 가타리(Pierre Guattari, 1930-1992)는 『천 개의 고원』에서 말했다. “단편소설은 마지막 소식인 반면 콩트는 최초의 이야기이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해파리의 노래 (1) | 2025.12.29 |
|---|---|
|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1) | 2025.12.26 |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1) | 2025.12.23 |
| 봄빛 (1) | 2025.12.22 |
| 무빙워크 (1) | 202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