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지은이 : 박형진
펴낸곳 : 디새집
변산의 농사꾼 시인 박형진(朴炯珍, 1958- )은 1992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봄편지」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잡은 시인의 시집은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창작과비평사, 1994), 『콩밭에서』(보리, 2011). 산문집은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 2003,), 도감으로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열화당, 2016) 네 권이었다.
산문집은 도서출판 《디새집》의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 시리즈 첫째 권이었다. 내가 잡은 책은 초판본으로, 20여년을 훌쩍 건너뛴 농업·농촌·농부의 세월이 무색했다. 시인은 「지나가는 길손과 막걸리잔을 나누리라」에서 분노했다. “남들처럼 쓰지 않고 먹지 않고 땀 흘려 일해도 빚이 느니 사람 미칠 지경이다. 빚만 없다면 하늘에라도 오늘 심정일 것 같다.”(210쪽)
산문집은 2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 ‘울퉁불퉁한 변산 사람들’은 부안 변산의 터줏대감 시인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덕재(어른 두 손바닥만한 병어)가득한 그물 속에서 어린 아들과 부둥켜안고 죽은 꽁댕잇배를 부리는 줄포사람 허갑열. 자맥질로 높은 파도에 떠밀려가는 경비정에 밧줄을 묶어 끌어올린 종태. 오빠·신랑이 죽었어도 웃어젖히고 비만 오면 무덤가에서 귀신울음소리 내는 실성한 고막녀. 폐렴으로 이십 안팎의 꽃다운 나이에 죽은 동네에서 제일 예쁜 봉니 누님.
머리 종기를 잘못 치료해 구더기같은 흉터가 남은 ‘고자리밥’ 종태. 눈을 자꾸 끔쩍이는 ‘눈끔찍이’ 또개네 오매. 남의 줄 것을 주지않고 미적거려서 오징어처럼 질기다고 ‘오징개’ 양반. 커다란 쥐 한 마리가 애기 때 머리를 뜯어먹은 ‘쥐 뜯어먹은 애’.
닭똥집에 환장하던 면장. 사철나무 이파리 풀피리를 잘 불던 ‘뺑돌이’. 앞이마가 툭 불거진 ‘골망둥이’. 간호원 출신 동네 돌팔이 의사 ‘나이롱 참외’. 여자처럼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던 영만씨. 올 때 주었다고 갈 때 차비를 낼 수 없다는 ‘오처녀’. 소주 댓병으로 치질을 떨어뜨린 서금용. 어머니 초상 때 삼일을 붙박혀 술만 먹은 친구 조찬준. 인사불성으로 냉장고 참기름을 병나발 불어 보름동안 설사한 허석모. 말술을 먹고 요에 가끔 오줌 싸는 박공진. 엉망진창으로 취해 사흘만에 일어나 중국집 짬뽕 곱빼기를 두세 그릇 비우는 정달원.
감정풀이하듯 욕을 하며 매질한던 골마리만 주무르던 김선생. 지각하게 되면 ‘일본 놈 노름방’이라는 바위에서 놀고 학교를 가지 않는 중간치기. 엄마를 졸라 달걀로 학용품과 군것질을 하던 수락동 첫머리 도현네 문방구. 구운 고구마가 손을 타자 뚜껑을 만들어 자기똥을 넣어 구운 남열이. 푸짐이·꽃님이·아루·보리는 위로 딸 셋, 밑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우리말 이름을 지어 준 시인.
제2부 ‘곡식 키우거나 자식 키우거나’는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예전의 농사와 먹을거리를 통해 자연을 존중하며 알뜰하게 살아가는 삶을 그렸다. 뜨물이 잡힌 보리를 홀태로 이삭을 따서 솥에 삶고, 꺼끄러기를 날린 다음 맷돌에 갈아 만든 가래죽·가래밥. 부엌문앞 토방 한 구석에 허름한 항아리 하나놓고 아침저녁의 설거지 물이나 음식찌꺼기, 호박 속 등을 받아두는 구정물. 소의 새끼를 가져다 키워서 새끼를 낸 다음 어미소는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배멕이. 경상도에서 즐겨 해먹는 콩잎김치.
박한 땅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녹두. 속을 보호하고 독을 제거하는 효능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던 녹두 미음. 숭늉이 더없이 고소하고 바삭바삭 맛있는 누룽지깜밥의 조밥. 허리에 자리개를 매고 여간 힘을 써야 했던 수수빗자루 매기. 알을 털어 낸 크고 곧은 깡치를 골라 두서너 뼘되는 나무를 박은 할머니들의 들긁개(효자손). 여름 곡식으로 가장 늦은 수확을 하는 메밀. 맷돌에 갈아 딱딱한 겉껍질을 키로 날리고 쑤었던 율무죽. 예쁘고 화려했던 기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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