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해파리의 노래
지은이 : 김억
펴낸곳 : 열린책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 없이 고히 보내 드리우리다 //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싸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진달래꽃」의 전문이다. 리뷰 서두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를 등장시킨 것은, 김억은 김소월의 문학스승과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시집을 펴낸 시인이라는 짧은 지식 때문이었다.
김억(金億, 1896-?)은 평북 정주에서 출생했다.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신학문을 접했다.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대학 문과에 입학했으나 부친의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고향으로 되돌아와, 1916년 모교 오산학교에 교사로 재직했다. 제자 김소월의 재능을 발견하고 문단에 진출시켰다.
유학생 잡지 『학지광』에 1915년과 이듬해, 창작시와 서구문학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했다. 〈폐허〉, 〈백조〉 동인으로 참가했다. 1920년대 중반 민족문학 진영에서 카프의 계급문학론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1946년부터 한국전쟁까지 육사·공사·서울여상에서 강의했다. 한국전쟁때 납북되었고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21년 최초의 역시집 『오뇌의 무도』, 1923년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발간했다.
김억은 시 뿐만 아니라 서구시와 시론의 수용, 민요시 운동에서 한국시사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해파리의 노래』는 정형시 창작으로 선회하기 전의 시들을, 9부에 나뉘어 75편을 실었다. 연작시로 3부 ‘표박漂泊’에 6수, 8부 ‘황혼의 장미’의 「사랑의 때」 2수가 실렸다. 1부-8부의 앞머리에 헌사獻詞가 실렸다.
지하의 남궁벽 / 지하의 최승구 / 끝없는 길에 떠도는 무명초無名草 / 비통悲痛의 염상섭 / 아우 홍권 / 평양의 김동인 / 옛 마을의 P·R·S / 동경의 김정식
책의 텍스트는 1923년 6월 30일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발간한 『해파리의 노래』의 초간본이다. 도서출판 《열린책들》의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은 김억의 첫 시집 『해파리의 노래』를 기점으로 했다. 표지는 30-40대 젊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꾸몄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시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적 표기법으로 수정했다. 시집 말미에 상세한 각주와 해설을 실었다. 책임편집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말했다. “한국 현대시를 대표할 만한 시집들의 초간본을 다시 출간하는 일은 점점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 여전히 오늘의 것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마지막은 첫 시 「꿈의 노래」(19쪽)의 전문이다.
밝은 햇볕은 말라 가는 금잔디 위의 / 바람에 불리는 까마귀의 나래에 빛나며, / 비인 산에서 부르는 머슴꾼의 머슴 노래는 / 멈춤 없이 내리는 낙엽의 바람 소리에 섞이어, / 추수를 기다리는 넓은 들에도 비껴 울어라. // 지금은 가을, 가을에도 때는 정오, / 아아 그대여, 듣기조차 고운 낮은 목소리로, / 조심스럽게 그대의 〈꿈의 노래〉를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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