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남북상징어사전

대빈창 2026. 1. 9. 07:30

 

책이름 : 남북상징어사전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실천문학사

 

80년대 민중문학에서 시인 하종오(河鍾五, 1954- )의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창작과비평사, 1981),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실천문학사, 1986)는 한국문학사에서 하나의 정전(canon)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후 탈분단 시집 『남북상징어사전』(2011)을 펴냈다.

문학평론가 장성규는 해설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 탈분단시의 가능성」에서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주변부 인민의 삶에 천착, 분단 체제의 경화 속에서 남북한 인민 간의 연대를 통한 탈분단의 가능성에 천착”했다고 말했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모두 62편을 실었다. 1부 시편들은 남과 북이 하나임을 나타내는 수많은 동명이인 ‘하종오씨’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분단과 통일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로 남북을 오갔다. 동갑내기, 북한 탈북자, 남한 토박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지 않은 부모 유산을 팔아먹은 이, 북한에 야외광고판을 세울 구상을 하는 광고업자, 전쟁고아 등.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추천사에서 “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군상은 역사의 아이러니 그 자체, 전망을 상실한 이 시대의 잿빛 풍경화”라고 말했다. 2부 시편들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현재를 이야기했다. 한 팔을 잃은 농사꾼 콜롬비아인, 다리 저는 양몰이꾼 에티오피아인, 개성공단 제품 주문 계획을 세우는 한국계 브라질 사업자, 한국에 축산노동자로 취업해가는 손자를 둔 중국인, 북한주둔 러시아군 아버지를 둔 보따리상 중년 여인, 손자가 한국 이주노동자로 갔다 장애인이 되어 돌아온 필리핀인,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유복자 영국인 무역상, 아버지는 한국 주둔군 병사로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계 미국 흑인, 월남했다 도일渡日한 삽화가, 중국 국경마을을 도는 보따리상 라오스인, 북조선 탈출녀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한인 등.

3부 시에서 서정춘 시인이 문인방북단 일원으로 북한에 갔다가 시집간 가난한 젊은 딸이 쥐어준 몇 십 달러를 노래방 서빙 북한 처녀의 손에 쥐어주는 「비상금」(80-81쪽)이 짠했다. 4부에서 부제가 ‘상상도’인 연작시들은 통일 한반도를 떠올렸다.

5부 시들은 탈북자들의 이야기였다. 굶어죽은 딸의 몫으로 첫술을 따로 담아두는 여인, 북한의 어머니께 자동입출금기로 송금을 꿈꾸는, 귀향길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승용차가 있어 행복해하는, 북한에서 수재민으로 남한 구호품 라면을 먹었던 일을 회상, 끼니마다 북한에서 맛도 보지 못한 요리를 하느라 도마소리 내는, 굶어 죽을까봐 습관처럼 옥수수씨를 심는, 키를 12㎝나 키워준 킬힐을 신는 잘 먹지 못해 키가 작은, 정착금을 경마장에서 다 날린 이 등. 마지막은 「여인 천하」(138-139쪽)의 전문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최귀림 씨와 / 베트남에서 시집온 메이 씨와 / 필리핀에서 취업 온 글로리아 씨와 / 연변에서 친척 방문했다 주저앉은 김화자 씨가 /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지 일 년이 지났다 // 네 여자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 한동네 지하 봉제공장에서 봉제공이 되었으니 / 겉으로는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들 하면서도 / 속으로는 팔자 사나운 여자들로 여겼다 // 말이 공장이지, 네 여자가 전 직원인 봉제공장에서 / 야근도 같이하는 여주인도 빛 때문에 / 앞날이 보이지 않기는 피차 마찬가지, / 남한과 북한이 사이좋지 못하면 경기 더 나빠져 / 주문량이 줄어들곤 해서 봉급 제때 주지도 못했다 // 최귀림 씨가 향수병에 시달리는 날이면 / 메이 씨가 입덧하는 날이면 / 글로리아 씨가 생리통 앓는 날이면 / 김화자 씨가 갱년기 장애로 힘겨워하는 날이면/ 여주인이 스트레스 받는 날이면 / 그런 날엔 그런 여자 혼자 쉬게 하고 / 다섯 사람 작업량을 네 여자가 나누어 처리하고도 /정시에 퇴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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