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붉은 시대

대빈창 2026. 3. 10. 07:00

 

책이름 : 붉은 시대

지은이 : 박노자

옮긴이 : 원영수

펴낸곳 : 한겨레엔

 

‘닥치고 읽어!’ 나의 독서여정에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손에 들었던, 첫 손가락에 꼽는 저자가 박노자(朴露子, 1973- )였다. 처음 만난 책은 『박노자의 만감일기』(인물사사상사, 2008)로 『붉은 시대』는 열두권째였다. 온라인서적의 검색창에 가장 먼저 두드렸던 박. 노. 자. 세 음절이었다. 책은 군립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만났다. 반가웠다. 나는 대여 도서목록의 다른 책들을 뒤로 물렸다.

2025년은 광복절 80주년이었다. 그리고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925년 4월 17일 서울시내 식당 아서원에서 박헌영, 김단야, 조봉암, 김재봉 등이 창당멤버였다. 극악무도한 식민지 일본 경찰의 탄압에 3년만인 1928년 해산 당했다. 사회학자 장석준은 추천사 「망각을 거부하라!」에서 “이 나라는 ‘공산주의’라는 네 음절 단어와 또 다른 복잡하고 심란한 인연을 맺고 있다. 더 슬픈 것은 이런 비극을 독재와 억압, 무지와 폭력의 빌미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342-343쪽)

조선공산당은 창당이후 항일투쟁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반제국주의, 소수민족 해방, 최저임금 보장, 산업재해 보상, 노동자 경여참여, 토지 개혁, 동성애 탈범죄화, 임신중지 합법화, 유급출산 휴가’등 급진적 의제를 내세우며 가장 억업 받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붉은 시대’는 1·2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戰間期(1920-30년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전개된 항일투쟁의 역사 한가운데서 그 사상사, 지성사 측면을 부각시켰다.

『붉은 시대』는 2부 7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주체들’은 범계급적 동맹으로서의 조선 공산주의자들을 다루었다. 1920-30년대 조선공산주의 간부들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었다. 1932-35년 독일공산당에서 활동한 경험의 부유층 출신 이강국부터, 적색농민조합의 문맹에 가까운 울진 농민들까지 참여했다. 200명 이상의 조선출신 혁명가가 모스크바로 가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공부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 볼셰비키당에 들어갔고,(남만춘, 최성우) 중국 공산당 대열 내에서 투쟁했고,(장지락) 또는 도쿄에서 공부하면서 급진화했다.(이재유)

2장 ‘분파와 분파투쟁’은 1920-30년대 조선공산주의운동의 분파논쟁의 양상을 다루었다. 레닌주의적 방법론과 용어를 공유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자와 정통 공산주의자 양측은 모두 식민주의를 조선의 경제·사회적 후진성의 근본 원인으로 인식했다. 자본주의 발전의 ‘유아적’ 단계, 노동자 의식과 운동의 저발달, 그리고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지식인의 역학이 필연적으로 과장된 현상을 '식민적 기형의 결과'로 파악했다.

3장 ‘공산주의 강령’은 조선공산주의 당 강령을 시기적으로 살폈다. 사회적 급진주의(토지개혁, 보편적 무상의료와 연금제도의 실행 등), 정치적으로 포용적 태도(프티부르주아 계층과의 동맹 강조 등), 경제적 실용주의(농업 기반의 사회에 대체로 적합하지 않은 중앙 집중적 계획 시스템이 아닌 발전의 첫 단계로서의 사회적 시장경제 비전) 그리고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모더니즘(작업장과 학교의 민주와 요구 등)의 유기적 결행을 의미했다.

4장 ‘박치우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박치우(朴致祐, 1909-1949)의 사상을 다루었다. 박치우 철학은 개인과 집단 차원에서 이론에 기반한 의식적인 사회적 실천문제, 그리고 역사적 지식에 기반한 현대 사회에 대한 분석에서 변증법의 적용에 강력하게 초점을 맞추었다. 5장 ‘사회주의 민족 개념과 역사’는 식민지 조선의 지적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폈다. 근대적 의미에서 민족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자, 자본주의에 내재한 모든 모순, 무엇보다도 계급 모순의 장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이 구축한 전형적으로 절대화한 민족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탈신화화하려고 노력했다.

6장 ‘1945년, 김사량의 중국 해방구 관찰’은 조선인 디아스포라 시각에서 조선민족 정체성에 관한 글을 썼던 김사량(金史良, 1914-50년)의 『노마만리怒馬萬里』를 다루었다. 중국여행 일지 『노마만리』는 해방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새로운 민족·인민 정체성, 즉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적인 면과 동시에 민족적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반식민 투쟁의 기억을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7장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는 조선인의 모스크바 여행기와 해방공간에서 좌파 지식인들의 기대를 살폈다. 혁명이전 시대와 1920년대, 붉은 시대의 급진적 질풍노도의 시기인 혁명직후 모스크바는 유례없는 사회적 실험의 장으로 보였고 상대적으로 더 평등한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후기 ‘남한과 북조선의 사회주의’는 해방공간과 전후세대를 거쳐 현재까지 사회정치적 변화를 이야기했다. 조선공산주의 저항운동의 영웅들, 아주 많은 분들이 탄압과 죽음으로 종국을 맞았다. 그들은 일본식민 경찰뿐만 아니라 소비에트와 남북한 정권, 1945-48년 남한의 미점령군과 예안과 만주의 중국공산군이 자행한 탄압의 피해자였다.

한국학자 박노자는 말했다. “그들의 비전이 나이브함과 주관주의적 희망에 머물러 있었더라도, 그들의 희생과 보편주의적 사고의 과감성은 조선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모두 공산주의 저항운동의 영웅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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