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
지은이 : 이문재외 21인
펴낸곳 : 마음의숲
1990. 2 14. 우주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지구를 촬영했다. 지구는 0.15픽셀 크기에 불과한 작은 점처럼 보였다.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다. 산림파괴, 멸종 동식물, 대기오염, 해양산성화, 대형 산불, 빙하 붕괴… 지구가열화로 인한 고통에 지구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예로부터 시인은 자연의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책은 스물두명의 시인이 모여 지구와 환경, 생태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시인 한 명마다 시 한편과 산문 한편, 모두 44편의 글을 통해 생태적 감수성을 담아낸 환경문학 기획서였다.
전구의 수명은 반영구적, 1924년 전구 생산업체들이 전구 수명을 1천 시간으로 제한하기로 담합, 이문재의 「‘노후화 기술’이라는 신기술」. 억새와 덤불이 서리에 덮여 있는 겨울 묵정밭이 산의 일부로 돌아가듯이 사람도 지상의 삶을 끝내고 돌아가는, 전동균의 「이 작은 별에서」. 아즈테카 사람들은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갔던 것이 아니라, ‘거대한 바깥’이라는 자연 속에서 반려인간으로 살았을 것, 주창윤의 「거대한 바깥의 사랑」.
불필요한 것들을 버림으로써 쓸데없는 것들에 나를 빼앗기지 않는 삶,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충만한 삶, 정끝별의 「소소익선에 우리 공통의 미래가」. 자본과 기술이 의존한 문명적 확장이 아니라 소비를 줄이고 타자와 공생하는 대안적 존재, 나희덕의 「물구나무종이 된다는 것」. 화초와 작물을 가꾸는 일은 생명의 활동을 돕는 일이어서 어쨌든 신의를 갖고 하지 않고서는 안 될 일, 문태준의 「자연의 시간」.
저절로 자라던 머위나 쑥, 냉이 같은 것들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에 구획되어 씹히는 맛도 향도 요즘 사람들의 성정만큼이나 거칠어진, 장철문의 「나물 캐러 산에 가지 않는다」. 1.5℃는 지구 평균온도 상승억제 목표였는데 2024년도 1.55℃로 상승하며 마지노선이 무너진, 손택수의 「1.55℃의 텐트와 부채」. 기후학자들의 예견은 2030년이 되면 한국의 국토 5.8%가 물에 잠기고 330만명 이재민이 발생, 이재훈의 「이상기후 신기록 제조의 시대」.
영원의 역사 가운데 극히 일부의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게 된 인간이, 지구를 인간의 방식대로 설계하고 조종하는데 몰두, 신혜정의 「어쩌면, 오늘은.」. 불과 얼음의 시대, 타오르는 여름과 냉혹한 추위를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 이혜미의 「계절이라는 사치」. 기상관측소의 계절 관측 표준은 최첨단 장비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계절의 기준을 세운다, 신미나의 「서울 벚나무에서 히로시마 단풍까지」.
위화감도 없이 오로지 아름다움 만을 위핵 플라스틱을 과용해 온 영역이 다름아닌 나의 시였다는 사실, 김연덕의 「안티 플라스틱 시」. 한 생명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 또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주위를 비워두는 것, 정다연의 「여름과 가을에 죽은 나무」. 제어되지 못한 인간의 욕망이 바다와 항구와 우리의 식탁을 황폐하게 만든 것, 김창균의 「도루묵 없는 도루묵 축제」.
겨울을 힘들게 나고 온 힘을 다해 개울에 알을 낳고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던 개구리와 두꺼비와 맹꽁이의 사체, 김남극의 「지구의 소리를 들으며 묵상하는 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선진국이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은 개발도상국이 겪는, 우은주의 「미세먼지는 가난을 따라 돈다」. 불연속적이고 파편화된 세계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기 쉬운 시절, 권현영의 「인간을 깊이 지탱하는 것, 자연스러운 모든 것」.
지구가열화로 인한 재난을 그린 영화 〈투모로우〉를 심각하게 얘기하다 쉽게 일상으로 매몰되는, 이동욱의 「우리 내일 봐요」.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지금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태평양 플리스틱 섬·제삼국 해변과 사막의 거대한 헌 폐기물 산, 조온윤의 「태초부터 미래까지」. 아프리카 오지에 백열등이 켜지며 환하게 웃는 흑인아이들을 보며 불빛에서 시작되는 또다른 착취를, 길상호의 「잃어버린 감각」.
대형고래 한 마리는 평균 33t의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는 탄소저장고로 한 해동안 나무 1,500그루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 같은, 권대웅의 「89년만의 폭염과 200년 만의 폭우와 117년만의 폭설」. 마지막은 정끝별의 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후예」(49-50쪽)의 전문이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리처드 바크의 우화소설 『갈매기의 꿈』의 주인공 이름이다.
해초인 줄 알고 어미새가 삼킨 / 찢어진 그물을 아기새가 받아먹고 // 토해내지 못하고 // 물고기인 줄 알고 어미새가 삼킨 / 라이터와 병따개를 아기새가 받아먹고 // 소화하지 못하고 // 오징어일 줄 알고 어미새가 삼킨 / 하얀 비닐봉지를 아기새가 받아먹고 // 일용할 양식으로 일용한 죽음의 배식 // 빙하 조각처럼 떠돌다 해안에 도착한 / 거대한 스티로폼 더미에 갇혀 // 깃털 하나 펴지 못하고 // 쓰레기로 꽉 찬 폐기물이 되었다 / 찍찍 유리에 긁히는 소리를 내며 // 죽어서도 썩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