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수용소군도 1

대빈창 2026. 3. 27. 07:00

 

책이름 : 수용소군도 1

지은이 :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옮긴이 : 김학수

펴낸곳 : 열린책들

 

러시아의 저항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2008)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했다. 경장편 분량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먼저 펼쳤다. 두 권짜리 『암 병동』이 비치되어 있었다. 귀에 익은 『수용소군도』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2024년에 《열린책들》에서 새로 찍어냈다. 나는 메모에 입력된 책들을 뒤로 물리고, 두 달에 걸쳐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희망도서 신청 기준은 출간일이 5년 미만으로, 한 달에 세권까지 가능했다.

1973년 파리 YMCA 출판사에서 펴낸 『수용소군도收容所群島』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추천사는 ‘외상적 경험에 대한 20세기 최고의 책’이었다. 《열린책들》은 20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판으로 『수용소군도』 특별판을 소량 제작했었다. 그 판본을 바탕으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258~263까지 여섯 권으로 출간되었다. 내가 잡은 책은 2024. 3. 30 세계문학신판 4쇄였다. 옮긴이는 故 김학수(1931-1989) 노문학자였다. 1권은 제1부 ‘형무소 기업’의 전반부로 1장에서 7장까지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에 벌어진 사건들을 다루었다.

군도群島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내부부의 학교를 거쳐 그곳으로 갔고, 경비하러 가는 사람들은 군사위원회를 거쳐 징집되었고, 강제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체포 과정을 거쳐 그곳으로 갔다. 소련의 기관은 GPU, NKVD, KGB 등으로 변화하면서 끊임없는 감시와 첩보활동으로 수용소 군도에 죄수들을 공급했다. 정거장마다 GPU의 지부가 있었고 몇 개의 감방이 있었다. 체포되는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이미 최악의 상태로 결말이 났다.

솔제니찐은 스메르시(소련군 방첩부대)에, 을씨년스런 유럽의 1945년 2월에 발트해 연안 좁은 전선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포병중대 장교로, 학창시절의 친구하고 나눈 편지 때문에 잡혔다. 징벌 감방의 길이는 사람의 키만 했고, 넓이는 세 사람이 누워 자기에 좁았다. 구겨지고 부서진 밀짚, 등피燈皮 없는 석유램프, 정방형의 뜰은 마당 전체가 인분으로 가득 찼다.

1929-30년의 숙청은 농민을 툰드라와 밀림지대로 보냈다. 1944-1946년에는 소수민족과 수백만의 러시아인이 대상이었다. 이들은 글을 몰라서 기록이나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다. 1937-38년 대상은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던 사람들로 당원, 지식인으로 참상에 대하여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회상에 잠겼다. 과거에 볼셰비키당 이외의 다른 정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는 러시아인이라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파멸의 운명을 맞았다. 1934-35년에 레닌그라드 시민의 4분의 1이 숙청되었다.

잔혹한 행위가 20세기의 전성기에, 사회주의적 원칙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회에서 자행되었다. 중세의 사형집행인들처럼 신문과, 검사, 재판관들은 주로 피고인 자신의 자백 속에서 죄의 증거를 찾는데 동의했다. 〈기관들〉은 체포된 자의 미래를 체념시키고 그의 현실을 왜곡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937년에 신문을 받으러 갔다가 다시 감방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동료의 이름을 파는 대신 죽음을 택했다.

KPZ·DPZ(미결수 형무소)는 빈대와 이 투성이의 창문도 없는 유치장, 통풍구도 없고 판자 침상도 없는 땅바닥이었다. 예까쩨리나 여제 시대의 수도원이었던 수하노프까는 MGB 산하 형무소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형무소였다. 퉁풍구는 언제나 닫혀있었고, 교도관이 아침마다 10분씩 열어주었다. 2백와트짜리 전구 불빛을 피하려고 눈에 손수건을 덮고, 얼지 않도록 세수수건을 감고 잠이 들었다. 솔제니찐은 뿌띠즈끼 정거장의 이웃 대기 감방의 NKVD 소령에게 교정 노동 수용소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극동 지방의 한국인들은 까자흐스딴으로 추방했다. 이것은 〈민족적인 혈통에 따른〉 체포의 첫 케이스였다’(119-120쪽)

‘스딸린의 눈에는 자기 나라가 온통 간첩으로 들끓고 있는 것 같이 보였음이 분명하다.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 역시 같은 혐의로 까자흐스딴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371쪽) 『수용소군도』 1권에는 한국인에 대한 언급이 두 번 있었다. 그 내막은 아래와 같다.

1937. 8. 21. 소련 공산당중앙위 서기장 스탈린은 원동遠東 연해주 일대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련군은 사전에 고려인 지도자 2,800여명을 체포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총살시켰다. 17만 명의 고려인들은 1937. 9. 1.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가축수송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3차에 걸친 강제이주는 124개 차량이 동원되었고, 이동 기간 42일 동안 2만㎞를 달렸다. 고려인들은 목적지도 알 수 없이 화장실도 없고 마실 물 한 모금 없는 화물열차에 실렸다. 그들이 내린 허허벌판의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이 해체되고,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이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사막이거나 식량 한 톨 건질 수 없었던 동토였다. 집도, 가구도, 농기구도, 돈 한 푼 없었다.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고 거센 눈보라와 살을 에이는 추위를 이겨냈다. 이주 초기 허약한 노인과 어린이 1만 여명이 풍토병과 추위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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