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수용소군도 3

대빈창 2026. 3. 31. 05:00

 

책이름 : 수용소군도 3

지은이 :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옮긴이 : 김학수

펴낸곳 : 열린책들

 

내가 잡는 《열린책들》의 ‘세계문학판’ 3권에는 원서의 도판 50점이 실렸다. 표지사진은 영화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에서 가져왔다. 3권은 제3부 ‘박멸―노동수용소’의 전반부 1장~11장으로 구성되었다. 『수용소군도』의 핵심 부분으로 속임수와 편법이 난무하는 수용소의 실상을 그렸다. 볼셰비키 정권은 수용소의 정치범들의 억압·통제하는데 형사범들을 이용했다. 그들은 강도, 강간, 절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들이었다. 형사범들은 일종의 중간관리자·특권수特權囚로 정치범들의 소지품을 강탈하고, 학대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 소비에트 수용소는 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 현장이었다.

1918년 7월 23일(10월 혁명 9개월후)에 〈임시 지령서〉가 나온 후부터 수용소가 생기고 〈군도〉가 탄생했다. 1959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6천6백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공산주의식 무보수 토요 노동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 적용되었다. 대륙에서 20-40킬로미터 떨어진 솔로프끼 제도의 옛 수도원에 초기 집단수용소가 개설되었다. 콩나물시루처럼 쑤셔 박혀 솔로프끼 섬에 도착한 죄수들은 다갈색 성벽 안의 흰 수도원을 보기도 전에 몇 사람은 질식해버렸다.

아동수용소만이 완전한 의류를 지급받았고, 여자들에게도 속옷, 양말, 머릿수건은 없었다. 모스끄바는 현지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계속 죄수 호송단을 보냈다. 섬들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용 매복소와 탈주자의 체포의 경비대의 임무, 경비대는 자유 고용인 외에 보통 살인범, 위조지폐범, 그밖의 형사범(도둑은 제외)이 편입되었다. 감방에 전염병이 돌면 전원 외출을 시키지 않았고 식사만 지급, 감방의 전원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1928년 12월 까렐리야의 끄라스나야 고르까에서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죄수들을 숲속에 밤새도록 방치하여 150명이 동사했다.

1923년에 솔로프끼 특별 수용소에는 3천명도 안되는 죄수를 수용, 1930년 무렵에는 이미 5만명에 달했고, 껨에도 3만명이 있었다. 1928년 솔로프끼 군도는 호송대 없이 북부지방 어디라도 일을 나갔고, 그들의 급료는 수용소가 착복했다. 군도의 북부 전체가 슬로프끼 제도에서 탄생했다. 백해운하 건설 첫 겨울, 즉 1931년에서 32년까지 10만명이 죽었다. 20개월의 건설기간동안 25만명이 죽었다.

티푸스가 만연하여 1만5천명이 죽자, 꼿꼿이 굳어버린 벌거숭이 시체를 바지까지 벗긴 채 도랑 속에 던져버렸다. 도둑들은 수용소에서 경찰, 나치의 돌격대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파렴치범들은 정치범들을 얼마든지 때릴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다. 가장 성적이 나쁜 죄수들은 커다란 자물쇠를 채운 마차에 태워 3-4킬로미터 떨어진 좁은 계곡에 방치해 얼어 죽었다.

바곤까(조립 침상)는 군도 죄수들의 침상으로 십자형으로 2개를 지지하는 머리와 발에 붙인 2단식으로 된 넉장의 깔판, 잘 때 한 사람이 움직이면 나머지 세 사람이 흔들렸다. 매트리스, 시트, 내의, 베개도 없이 맨 널빤지에서 잤다. 11시반이 지나서야 지친 수용소는 겨우 잠들고, 4시15분에 금속성 소리가 수용소의 잠을 깨웠다. 수면 부족으로 머리는 숙취 때와 같고, 아직 눈을 뜨지 못해 세면도 할 수 없었다.

까르 수용소의 토목작업, 북방의 산림채벌 작업에서 13시간은 노동 시간만 계산한 것으로 산림 속으로 5킬로미터 거리를 왕복한 시간은 뺐다. 노르마를 못했을 경우 호송병들만이 교대했고, 일꾼들은 서치라이트 불빛아래 밤중까지 숲속에서 작업을 계속하다 새벽에 수용소에 돌아와 전날의 저녁밥과 아침밥을 함께 먹고 다시 작업장으로 갔다. 죄수들은 영하 50도 이하의 혹한에도 작업을 나갔고, 생산량은 다른 날에 얹어 퍼센트를 올렸다. 아주 건장한 일꾼도 산림벌채 노동에 아주 지쳐서 겨울 동안에 대부분(8백명중 725명)이 죽었다.

여자 수용소에서는 더운 물을 구경할 수 없고, 이 조사로 겨드랑이와 음부의 털을 깎았다. 여자를 지켜주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노령과 추한 미모였다. 〈군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수유 기간이 끝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고, 유아들은 〈아이들의 마을〉에 수용되었다가 1년후에 일반 고아원으로 보냈다. 양친의 영양실조로 자주 신체장애아가 태어났다.

일반작업에서 벗어난 자, 혹은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 자를 특권수라 한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장기수는 거의 다 특권수였다. 통상 주거 지역에서 작업 현장으로 하루 종일 일하러 나가지 않는 자는 수용소 구내의 특권수였다. 도착하는 사람들, 호송되어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 또한 일반 노동자들의 운명은 특권수에 의하여 결정된다. 특권수의 지위는 죄수를 착취하고, 일꾼들한테 업혀서 그들에게 돌아갈 것까지 먹었고 그들을 희생키켜서 자기가 살아남았다.

정통파 공산당원이란 사상적 신념을 신문관 앞에서, 감방에서, 수용소에서 상대가 누구든 드러내 보였으며,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상기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입각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들은 자기들을 일반 노동에 동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장차 소비에뜨 인민을 유효하게 지도하기 위해 자신들을 보호하기 어려워지면, 수용소에 있는 동안 〈생각해 보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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