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계획적 구식화

대빈창 2025. 11. 24. 07:30

9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부엌에 난데없이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으셨다. 말그대로 난데없이였다. 그 시절 우리집은 김포벌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들고개 언덕 집에 살았다. 3남1녀의 형제들은 시집 장가가서 분가했다. 부모와 막내아들의 단출한 세 가족이었다. 솔직히 나는 놀랐다. 우리 집의 경제적 형편은 시골마을에서 궁핍한 측에 속했다. 2천평 두 필지의 논농사가 전부인 빈농이었다. 한마디로 언감생심이었다. 아버지의 욱하는 성격이 저지른 사고였는지 모르겠다.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계획적 진부화陳腐化는 기업에서 새로운 상품을 제작할 때 의도적으로 상품의 기능·성능을 조작하여 일정시간의 경과 후 급격히 노후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비윤리적 업그레이드 기술이었다.

제너럴 모터스의 CEO였던 알프레드 P. 슬로언이 강조한 경영 기법이다. 의도적으로 제한된 수명을 가진 제품을 만들고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그 제품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전략이다. 중고 또는 렌탈(공유 경제) 시장을 견제하는 방법이다. 전략은 소비자의 제품 구입 횟수를 늘려서 장기 판매량을 창출했다. 이것은 판매 후의 중고 시장을 견제하는 한 방법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계획적 구식화는 현대 소비 사회의 소비 패턴과 자원 순환 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자원 낭비, 쓰레기 증가, 에너지 과소비 등 환경 문제와 경제적 불균형이 발생했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삼성 김치냉장고는 1993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이후 꾸준히 생산·판매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구입한 김치냉장고는 뚜껑형 초창기 모델이었다. 당신은 돌아가셨고 2008년 초겨울, 황해의 작은 외딴섬에 어머니를 모시고 삶터를 꾸렸다. 김포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가전제품이 김치냉장고였다. 섬에 들면서 냉장고, 세탁기를 새로 들였다. 시장·마트하나 없는 섬에서 식재료를 보관하려면 김치냉장고가 더 필요했다. 좁은 부엌에 일반냉장고, 뚜껑형 김치냉장고 두 개가 꽉 들어찼다.

우리나라 가전제품의 내구연한은 정확하게 10년이었다. 2018년 일반냉장고와 세탁기를 교체했다. 섬에서 들인 김치냉장고도 여지없이 10년 만에 새 것으로 교체했다. 기가 막힌 기술력이었다. 아버지가 들인 김치냉장고만이 세월을 거슬러 홀로 생생했다. 그동안 서비스센터 수리기사의 도움으로 휴즈를 교체한 것이 유일한 고장이었다. 뚜껑 안쪽의 고무패킹이 헐거워져 문짝이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섬에서 들인 냉장고, 세탁기, 김치냉장고가 폐기물이 되는 동안, 아버지의 김치냉장고는 끄떡없을 것이다. ‘계획적 구식화’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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