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는 나의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당신은 요양원 입소를 겁내셨다. 평생을 막내아들과 살아오신 어머니는 두려웠을 것이다. 당신은 요양원 얘기가 나오면 닭똥같은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다행스럽게 천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 입소날짜가 확정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명한 〈충북 음성꽃동네〉가 본원이라면, 전국에 흩어져있는 몇 군데의 〈꽃동네요양원〉은 분원이었다. 관할 교구가 ‘청주 교구’였다.
어머니 요양원 입소를 일주일 남겨두고, 나는 무릎 반월연골판이 재파열되었다. 어머니 요양원 입소가 우선이었고, 병원 입원을 미루었다. 다행스럽게 요양원은 나의 딱한 사정을 봐주었다. 이틀 뒤로 요양원 입소가 앞당겨졌다. 입소에 필요한 서류와 물품을 준비했다. 강화읍내에 나가 어머니가 입을 옷가지마다 명찰자수를 새겼다. 심지어 속옷과 양말까지도. 입소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나는 무릎 반월연골판 봉합 재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가 적응하실지 걱정이 앞섰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면 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겠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닥친 상황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나의 마음은 아팠다. 열흘이 지났다. 병원에서 외출을 나와 목발을 집고 작은형과 요양원으로 향했다. 형은 어머니께 드릴 폴더폰을 준비했다. 다행스럽게 어머니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어머니의 외출을 사전에 조율했다. 조카까지 네 가족은 점심을 같이했다.
어머니의 영세명은 ‘방지거’이다. 김포에 사실 적에 당신은 〈통진성당〉의 천주교 신자였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에 삶터를 꾸린지가 어언 17년이 되었다. 섬에 들어오면서 성당에 못 나가신 어머니는 당신의 방에 작은 기도처를 꾸몄다. 글을 모르시는 당신은 성경과 성수, 성모 마리아와 예수 사진, 나무십자가를 벽에 걸었다. 어머니가 환각 증세로 잠결에 악몽에 짓눌려 고함을 질렀다. 나는 카세트를 구입해 찬송가 기도문 CD로 당신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드렸다.
3주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고 작은형과 함께 섬에 들어왔다. 형은 내일모레 출도出島하면서 어머니 면회를 갈 것이다. 형제는 어머니를 뵈러 갈 적마다 천원지폐 몇 장을 준비하기로 했다. 일요일마다 미사에 참석하는 당신의 헌금이었다. 어머니 방의 성경을 챙겼다. 형제는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어머니 외출과 면회를 가기로 약속했다. 보름에 한번은 어머니를 뵙게 될 것이다. 면회시간이 짧아, 외출을 적극 이용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고향 석모도를 한 바퀴 돌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대접해드려야겠다. 구순 넘어 처음 잡는 핸드폰이 당신은 낯설었다. 저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 왔다.
“잘 안 들리는구나. 그만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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