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들을 위하여

대빈창 2026. 4. 10. 07:00

 

책이름 : 우리들을 위하여

지은이 : 최하림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내방 책장에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시리즈가 01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에서 16 최승호의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까지 일련번호대로 꽂혀있다. 호기롭게 나는 시리즈를 전부 소장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시집이 나온 지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17 김언의 『거인』과 18 장승리의 『무표정』 두 권의 이빨을 빠뜨렸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나는 병수발을 드는 작은형께 시집을 부탁했다.

나는 왜 시인 최하림(崔夏林, 1939-2010)의 첫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의 복간본을 손에 넣었을까. 여림의 유고시집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최측의농간, 2016)을 잡고부터였을까. 여림은 스승 최하림의 이름 끝자를 빌려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서울예전에서 수많은 문인들을 길러낸 문단사관학교 교관으로 인상에 남았을까.

시인은 신안에서 태어나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빈약한 올페의 회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등단작은 시집의 마지막 시편이었다. 1960년대 김현, 김승옥, 김치수와 함께 《산문시대散文時代》 동인 활동으로 4·19세대의 새로운 문학장을 열었다. 일곱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시인은 ‘순수와 참여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열린 시선으로 사물과 세계를 관조’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간본이 1976년에 나왔으니 반세기만의 복간본이었다. 4부에 나뉘어 59편이 수록되었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해설 「‘무적’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바람의 노래―최하림의 『우리들을 위하여』 다시 읽기」에서 ‘최하림 시의 상상력과 그 가능성의 광맥을 두루 내포하고 있는 노두와 같은 시집’(119쪽)이라고 말했다. 연작시는 「가을의 말」 6편과 「백설부白雪賦」 2편이 실렸다. 마지막은 「눈」(56쪽)의 전문이다.

 

눈이 내린다 서울에서도 그중 순결한 눈을 맞으며 수유리 숲길을 오르면 우리들 정신은 눈이 되어 허공에서 내려와 허공으로 돌아간다 펑펑 내리는 눈이여 우리들이 밟고 가는 눈이여 거부로 들끓는 한 사나이는 피 어린 언어를 토해내지만 칼끝을 걸어가는 아픔을 가지지 못한 언어는 칼끝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언어는 칼일 수 없다 녹아서 지심 깊숙이 스며들어 사물의 뿌리를 축이는 눈이여 너희는 우리의 정신을 순결하게 세척해주지만 거부로 끓는 우리는 거부로써 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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